제4장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제3절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ㅂ판: 제2편 제6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구매수단이나 지불수단으로서 상품의 가격을 실현하는 화폐 자체에서는 가치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품 교환은 등가물 간에 이루어지므로 구매되는 상품에서 가치변동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교환(유통 내부)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변동은 “상품의 사용가치 자체”에서, “상품의 소비” 즉 유통 외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품은 유통 내부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어떤 상품의 소비에서 가치를 뽑아내려면 우리의 화폐소유자는 운 좋게도 유통영역 내부[곧 시장]에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 하나의 상품을 발견해야 한다. 즉 자신의 사용가치가 곧바로 가치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현실적 소비가 곧 노동의 대상화이자 가치의 창출이 되는 그런 상품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폐소유자는 시장에서 실제로 바로 그런 특수한 상품을 발견한다. 노동능력(Arbeitsvermögen)[즉 노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력[또는 노동능력]이라고 불리는 것은 인간의 신체, 즉 살아 있는 인격 속에 존재하며 그가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를 생산할 때마다 작동시키는 육체적 · 정신적 능력의 총체이다. (ㄱ판, 251; M181)


유통에서 발생할 수도 없고 유통 외부에서 발생할 수도 없는, 유통에서 발생해야 하는 동시에 유통 외부에서 발생해야 한다는 모순. 이 모순을 해결할 열쇠는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내주는 독특한 상품, 바로 노동력이다. 이 노동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두 가지 있다.


이 노동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어야 노동력은 상품으로 시장에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노동능력이나 인격에 대해 자유로운 소유자여야 한다”(ㄱ판, 251; M182). 노동력의 판매자는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며, 구매자와 법률적으로는 동등하다. 노동력의 판매자는 일정 시간 노동력의 처분권을 구매자에게 ‘양도’한다. 둘째, 노동력의 소유자는 노동력 말고는 팔 것이 없어야 한다. 생산수단이 있어서 그것으로 자기 노동력을 대상화하여 상품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노동력을 팔 필요가 없으므로.  


화폐소유자가 노동력을 시장에서 상품으로 발견하기 위한 제2의 본질적인 조건은 노동력의 소유자가 자기 노동을 대상화시킨 상품을 판매할 수 없고 그 대신 자신의 살아 있는 육체 안에만 존재하는 자신의 노동력 그 자체를 상품으로 팔기 위해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ㄱ판, 252; M183)


어느 누구든지[심지어 공상가*조차도] 미래의 생산물, 즉 아직 생산이 완결되지 않은 사용가치를 가지고 생활할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은 (…) 계속해서 날마다 소비를 해야만 한다. 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려면 그것들은 생산된 뒤에 판매되어야 하며 그렇게 판매된 뒤에야 비로소 생산자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 (ㄱ판, 253; M183)


“공상가”는 일판에는 “미래파의 음악가”다. 


* 음악극에 의해 ‘종합예술작품’을 창조하고자 한 바그너의 『미래의 예술작품』에서 비롯되었으며, 반대파가 ‘공상가’의 뜻으로 쓴 같은 파에 대한 경멸의 호칭. 


다시 말해 노동력의 소유자(노동자)는 노동력을 ‘자유롭게’ 팔 수 있는 “자유로운 인격체”이며, 또한 오로지 그 노동력밖에는 팔 것이 없는, 생산수단이 없는(free of) 사람이다.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를 위해 화폐소유자는 상품시장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해야 된다. 이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즉 한편으로는 그 노동자가 자유로운 인격체로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 마음대로 처분한다는 의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판매할 아무런 다른 상품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노동력의 실현에 필요한 모든 물적 조건에서도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ㄱ판, 253; M183)


독어판 원문이 “frei ist von allen zur Verwirklichung seiner Arbeitskraft nötigen Sachen”인데, “물적 조건”보다 ‘물건’이라고 쓰는 것이 단순명료하고 정확하다.


그럼 대체 어째서 이렇게 노동력 판매자와 화폐 소유자가 마주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지금 파고들 문제는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며 “과거의 수많은 사회적 생산구성체의 몰락의 산물”(ㅂ판, 221; M183)이라는 점이다. 상품과 화폐 역시 “역사적 흔적”을 갖는다. 생산물이 상품이 되는 것은 사회 내의 분업이 발달했을 때 가능하며, 모든 또는 다수의 생산물이 상품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만 일어난다. 이미 제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화폐는 상품교환의 발전을 전제로 하며 각종 화폐형태(단순한 상품등가물에서 세계화폐에 이르기까지)는 사회적 생산과정의 여러 단계들과 관련을 맺는다. 상품유통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화폐형태가 나타난다. 하지만 ‘자본’은 좀 다르다.   


상품유통과 화폐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자본이 존재할 수 있는 역사적 조건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자본은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할 때에만 비로소 발생하며, 이것이야말로 세계사적인 역사적 조건을 이룬다. 따라서 자본은 처음부터 사회적 생산과정의 한 시대를 알린다. (ㄱ판, 254; M184)

 

자본주의 시대의 특징은, 노동력이 노동자 자신의 처지에서 볼 때 스스로 소유한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따라서 그의 노동이 임노동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부터 비로소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가 일반화된다. (ㄱ판, 254; M184)


노동력 역시 하나의 상품이므로 상품의 가치가 결정되는 방법, 즉 그것이 생산 · 재생산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하지만 그 결정 조건이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 다른 점도 있다. 


노동력은 살아 있는 개인의 능력으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력의 생산은 이 개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 있는 개인은 일정량의 생활수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이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귀착된다. 바꿔 말하면 노동력의 가치는 그 소유자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이다. (ㄱ판, 255; M185)


“존재”보다는 '생존'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필수적인 욕구의 범위나 그 충족 방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체로 한 나라의 문화수준에 따라 결정되는데, 특히 자유로운 노동자계급이 어떤 조건 하에서 또 어떤 관습과 기대를 가지고 형성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는 달리 노동력의 가치규정에는 역사적 및 도덕적[정신적] 요소가 포함된다. (ㅂ판, 224; M 185)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일판에서는 “도덕적” 대신 “사회관습적”이라고 썼다. 이러한 생활수단의 총액에는 노동자의 자녀 양육비와 노동자의 교육훈련비용이 포함된다. 


노동력이라는 이 특수한 상품의 성질 중에는 이 상품의 사용가치가 구매자에게 곧바로 옮겨 가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된다. 노동력의 양도와 기능 발휘 사이에 시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화폐는 대개 나중에 지불된다. 노동력의 가치는 이미 유통되기 전에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노동력의 가격에 대해 지불을 받기 전에 그것을 구매자로 하여금 소비하게 하며”, “신용대부를 해주는 셈”이 된다. 노동력의 소비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유통영역)의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이제 다음 장부터는 “비밀스러운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 자본이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생산되는지 밝히게 될 것이다. 


노동력의 판매와 구매가 이루어지는 유통[또는 상품교환]의 영역은 사실 천부인권의 진정한 낙원이었다.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 · 평등 · 소유 · 벤담이다. 자유! 왜냐하면 상품[예를 들어 노동력] 교환의 구매자와 판매자는 오로지 그들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구매자와 판매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적으로 자유롭고 대등한 인간으로서 계약을 맺는다. (…) 평등! 왜냐하면 이들은 오로지 상품소유자로서만 서로 관계하며 등가물을 서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소유! 왜냐하면 이들 각자는 모두 자신의 것만을 처분하기 때문이다. 벤담!*1 왜냐하면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하나의 관계로 묶어주는 유일한 힘은 그들 자신의 이익[즉 각자의 개별적인 이익, 각자의 사적인 이해]이 발휘하는 힘이다. 이렇듯 그들이 각자 자기만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은 사물의 예정조화*2가 빚어내는 결과에 따라 (…) 오로지 그들 상호간에 이익이 되는 사업(…)만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ㄱ판, 261~62; M190) 


*1 영국의 법학자 · 철학자 벤담의 공리주의, 즉 행복 · 쾌락을 도덕과 입법의 기본 원리로 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2 세계를 형성하는 실체는 모나드(單子: 하나 또는 단위라는 뜻)인데, 모나드로부터 이루어지는 세계에 질서가 있는 것은, 신이 사전에 모나드 상호 간 조화를 이루도록 정해놓았기 때문이라는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주장에서 비롯된 생각. 보편적 조화라고도 한다. 


읽을수록 명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heesang님의 글  “(78) 자유! 평등! 소유! 벤담!”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전자[자본가]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후자[노동자]는 자기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다. (ㅂ판, 231; M191)


* 보통은 '위험을 떠맡다' '불쾌한 결과를 견디다'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마르크스는 그 말 그대로를 써서 풍자하고 있다. 


가죽을 팔아버리고, 무두질 당할 일만 남았으니 겁에 질려 주춤거릴 수밖에. 국어사전에도 ‘무두질하다’는 “생가죽, 실 따위를 매만져서 부드럽게 만들다” 외에도 “주리를 틀다”란 뜻이 있다. 




(2013. 11. 22 다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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