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섬 관련 이야기는 먼저 heesang님의 "로도스 섬에서의 마르크스의 점프"를 읽기를 권한다. 이번 보충의 거의 대부분은 그분의 글에 힘입은 것이다. (이하 헤겔 {법철학} 인용은 heesang님의 글에서 재인용함.) 



1) 일어판

일어판에는 의외로 별다른 주가 없다. 뭔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짤막하다.


아이소포스 『우화』, 하룸판, 203행. 로도스 섬에서 높이뛰기를 했다고 하는 허풍선이에게, 그러면 여기서 뛰어보라고 사람들이 말했다는 우화로부터. 


2) 헤겔 {법철학}

이런 이솝 우화에서 유래한 간단한 말을 가지고 먼저 비틀기(?)를 시도한 것은 헤겔이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이런 짓을 시작... 


철학적 저작으로서의 이 글은 추호도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구상을 내놓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교훈은 결코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를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라는 인륜적인 우주가 어떻게 인식되어야만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


[중략] 어떤 철학이 그가 처해 있는 현실의 세계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한 개인의 그의 시대를, 즉 로도스 섬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간다는 망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 개인의 이론이 실제로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어 마땅히 있어야만 할 세계를 건립한다면 그 있어야만 할 세계는 물론 존재하겠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 속에만 있을 뿐이다 - 즉 그것은 무엇이라도 임의로 상상해낼 수 있는 취약한 지반 위에 존재할 뿐이다.


앞에 인용된 어투를 조금 바꾸어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역주)


* 여기서 헤겔은 그리스의 '로도스'(섬 이름)를 '로돈'(장미꽃)으로, 라틴어의 'saltus'(뛰어라)를 'salta'(춤추어라)로 약간 변형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미를 기쁨의 상징으로 본 헤겔은 다름 아닌 현실 속에서 이념을 인식해야만 할 철학이 임무를 다했을 때의 그 기쁨을 이렇게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 헤겔, {법철학}, 한길사, pp. 50~51


그러므로 다시 정리하면 헤겔이 이렇게 했다는 것.

Hic Rhodus, hic saltus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보라!)

Hic Rhodon, hic salta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처음에는 이 유명한 말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보라"는 것이 '실천'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깊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헛된 관념과 이상을 비웃는 동시에, '로도스 섬' 그 자체, 즉 '현실'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3) 길판과 비봉판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한번 뛰어보아라(Hic Rhodus, hic salta)! - 길, 250


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자, 여기서 뛰어보라! - 비봉, 217


비봉판은 원문이 없다. 길판의 원문은 "Hic Rhodon, hic salta", 그러니까 정확히 하자면 '뛰어보아라saltus'가 아니라 '춤추어라salta'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salta'로 쓴 것이 실수냐 의도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확실한 게 없다. 


4) {브뤼메르 18일}

heesang님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로도스 섬을 처음 언급한 것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며, 여기에서도 마르크스는 의도인지 실수인지 모를 인용을(그 특유의 비틀기..?) 보여준다. "Hier ist die Rose, hier tanze!"(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로도스 섬' 대신에 '장미'라고 썼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2}에는 이 부분에 원서 편집자의 다음과 같은 후주가 있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a!'는, 언젠가 자기가 로두스에서 매우 높이 뛰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이솝 우화 [허풍선이 나그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춰라!'는, 헤겔이 자신의 책 {법철학 강요 혹은 자연법 및 국가학의 기본 개요}(『저작집』제8권, 베를린, 1833)의 서문에서 위의 문구를 변형시킨 것이다(그리스어에서 로두스는 '장미'와 동의어이다). 


* 추가: 이 후주에서 "로두스는 '장미'와 동의어"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heesang님의 지적. 'Rhodon'(Ρόδων)이 그리스어로 장미다. 


5) 영어판들

(나의 영어 실력은 검은 것은 알파벳이고 흰 것은 종이인 수준이므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이 좋다...)


펭귄판부터 보면,


The money-owner, who is as yet only a capitalist in larval form, must buy his commodities at their value, sell them at their value, and yet at the end of the process withdraw more value from circulation than he threw into it at the beginning. His emergence as a butterfly must, and yet must not, take place in the sphere of circulation. These are the conditions of the problem. Hic Rhodus, hic Salta!*


* This is the reply made, in one of Aesop's fables, to a boaster who claimed he had once made an immense leap in Rhodes. 'Rhodes is here. Leap here and now.' But it is also a reference back to the Preface to Hegel's Philosophy of Right, where he uses the quotation to illustrate his view that the task of philosophy is to apprehend and comprehend what is, rather than what ought to be.


펭귄판에는 해당 부분에 각주가 있는데 이 각주 처음 부분은 일어판과 비슷한 내용이다. But 부터는... 이 말이 헤겔의 {법철학} 서문을 인용한 것인데, '있어야 하는' 세계가 아닌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라는 그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이 말을 인용한 것이라는 얘기... 


MIA에서는...


Our friend, Moneybags, who as yet is only an embryo capitalist, must buy his commodities at their value, must sell them at their value, and yet at the end of the process must withdraw more value from circulation than he threw into it at starting. His development into a full-grown capitalist must take place, both within the sphere of circulation and without it. These are the conditions of the problem. Hic Rhodus, hic salta!25]


[25] See MIA Glossary.


저 각주 25를 열면 엄청난 분량의 글이 나온다. (해석이 되는 부분만 겨우겨우 정리했을 뿐 절대 신뢰할 수 없다. 해석하기 힘들어서 영어로 그냥 둔 부분, 또는 해석했지만 틀린 부분에 대해 부디 조언, 지적 부탁드린다. 저 해석 못한 부분에 매우 중요한 게 담겨 있다는 느낌이...;;) 


Hic Rhodus, hic saltus!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


잘 알려졌지만 제대로 이해되지는 않은 이 격언은 오역이 있는(?) 이솝 우화 "The Boastful Athlete"의 라틴어 번역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이 말은 이렇게 읽는다: 

"ιδού η ρόδος, 

ιδού και το πήδημα "


어느 허풍선이가 로도스 섬에서 자기가 엄청난 도약을 했다고 자랑하며 증인도 있다고 허풍을 떨자 사람들이 "좋아, 그럼 여기가 로도스라 하고 여기서 뛰어봐라"고 하는 이야기다.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아닌 행동에 의해 알 수 있다는 뜻. 그런데 헤겔은 존재하는 것을 개념에 따라 파악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저 위에 인용한 {법철학} 부분에서 나오듯이,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를 조금 바꾸어서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Hier ist die Rose, hier tanze"라고 쓴다.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이 말을 "Hic Rhodus, hic salta!"로 인용한다. 헤겔의 두 가지 버전(salta = dance! instead of saltus = jump)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Hier ist die Rose, hier tanze!" '로도스' 대신에 '장미'라 썼다. 


But Marx does seem to have retained Hegel’s meaning, as it is used in the observation that ....


"자신들의 목적들이 너무나 거대하다는 것에 놀라 거듭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떠한 반전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창출되어 관계들 자체가 다음과 같이 외치게 되면 이러한 물러섬은 끝나게 된다.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춰라!"


그리고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다음 구절이 생각난다. "따라서 인류는 그가 해결할 수 있는 과업만을 제기한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과업 자체가 그 해결의 물적 조건들이 이미 주어져 있거나 적어도 생성 과정에 있는 곳에서만 출현하기 때문이다." 


So Marx evidently supports Hegel's advice that we should not “teach the world what it ought to be”, but he is giving a more active spin than Hegel would when he closes the Preface observing: 


     “For such a purpose philosophy at least always comes too late. ... 

      The owl of Minerva, takes its flight only when the shades of night are gathering.”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5장에서 이 구절을 대체로 이솝이 뜻하는 바대로 이용하면서도 saltus 대신에 salta를 썼다.  



{법철학} 서문에서 관련 부분을 좀더 찾아보면... 

 

이제 이 세계는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과 관련하여 한마디 한다면, 그러한 교훈을 받아들이기 위한 철학의 발걸음은 언제나 너무 느리다고 하는 점이다. 세계의 사상(思想)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의 형성 과정을 완성하여 스스로를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라야 비로소 시간 속에서 형상화된다. 바로 이와 같이 개념이 가르쳐주는 이것을 역사도 또한 필연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으니, 즉 그것은 현실이 무르익을 때에 비로소 관념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에 맞서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또한 전자는 후자의 실재적인 세계를 그의 실체 속에서 파악하는 가운데 이를 하나의 지적(知的)인 왕국의 형태로서 구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이 자기의 회색빛을 또다시 회색으로 칠해버릴 때면 이미 생(生)의 모습은 늙어버리고 난 뒤일뿐더러 이렇게 회색을 가지고 다시 회색칠을 한다 하더라도 이때 생의 모습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되는 것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법철학},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89, 36∼37쪽


MIA의 각주 이 맨 마지막 부분에 "Thanks to Isaiah Berlin Virtual Library"라고 나오는데 여기에 또 링크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제까지 했던 이야기들과 거의 비슷한 듯한데 아리송한 부분이 하나 눈에 띈다.  


Marx adopts the saying in 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Bonaparte [Karl Marx, Friedrich Engels, Werke (Berlin, 1956–83), vol. 8, p. 118.], where he first gives the Latin, in the form ‘Hic Rhodus, hic salta!’, a garbled mixture of Hegel’s two versions, and then immediately adds ‘Hier ist die Rose, hier tanze!’, as if it were a translation, which it cannot be, since Greek Rhodos (despite what all the standard commentators say to the contrary), let alone Latin Rhodus, does not mean ‘rose’.


아까 {브뤼메르 18일} 후주에서는 그리스어에서 로두스는 '장미'와 동의어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선 또 아니라고 하는 듯... 


* 추가: 그리스어 Rhodos, 라틴어 Rhodus 모두 '장미'가 아니라는 것.





아무래도 영어판 각주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지금 내 능력으로는 무리. 로도스 섬에 대한 일어판 편집자 주가 그렇게 간단하지만 않았어도, 영어판 들여다보다가 그만 날새지는 않았을 텐데... 

로도스 섬 때문에 저처럼 골치 아픈 분은 이 글을 보면서 로도스 섬의 풍광이나 감상해보시길...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시간, 공장법  (0) 2012.06.11
사물은 원래 모습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0) 2012.05.22
화폐  (0) 2012.04.26
리카도, 로셔, 베일리  (0) 2012.02.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