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어판 서문(1886)


1883년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직후 이 책의 영어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 이 책의 번역을 떠맡겠다고 나선 사람은 마르크스와 나의 오랜 친구이자 이 책에 대해서 아마 어느 누구보다 정통하다고 생각되는 새뮤얼 무어였다. [...] 무어가 자신의 직업적인 일에 쫓겨 [...] 이번에는 에이블링이 이 일의 일부를 떠맡겠다고 제안하였고, 우리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막내딸 에이블링 부인이 인용문들을 맡아서 영국의 저자들이나 청서에서 발췌하여 마르크스가 독일어로 옮겨놓은 부분을 모두 원문 그대로 복원하는 일을 맡기로 하였다. (ㄱ판, 70~71; M36)


인용한 문단의 맨 끝에 한 문장이 빠져 있다. 일판을 기준으로 옮기면 "이 일은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 책 전체적으로 이루어졌다." 일판에 따르면 무어의 "직업적인 일"은 법률가로서의 일을 말한다. 


마르크스의 막내딸 Eleanor, 에이블링에 대하여. 

이제까지 본 여러 문헌들에서 Eleanor 표기로 모두 세 가지 버전을 보았다. 엘리너, 엘리노어, 엘레아노어. 정말 제각각이다. 사소하지만 직업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 Eleanor가 태어나 자라고 활동한 곳은 영국이므로 영어를 기준으로 표기하면 엘리너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좀 찜찜한 구석이... 이미 유부남인 상태에서 엘리너와 동거했던 에이블링은 자본론을 영역하기도 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했지만, 이런저런 금전 문제도 일으켰고 엘리너를 결국 비극적인 자살로 몰고 간 사람이라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맑스사전』).  


용어 사용의 문제에서.


모든 학문의 새로운 견해는 이 학문에서 사용되던 전문용어들의 혁명을 포함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화학이다. (ㄱ판, 72; M37)


과학의 모든 새로운 진보는 그 과학의 용어 혁명을 수반한다. (ㅂ판, 29)


MIA에서는 "Every new aspect of a science" 일판에서는 "과학상의 새로운 견지(見地)"로 되어 있다. '견지'는 견해나 입장 정도의 뜻. aspect를 진보라고 옮긴 건 좀 이상한 듯.


고전파 경제학은, 이윤과 지대는 생산물 중 노동자가 자기의 고용주에게 제공해야 하는 불불부분[...]의 분할부분 · 몫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윤과 지대에 관한 통속적 관념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생산물의 불불부분[...]을 하나의 전체로서 연구한 적이 없었으며, 그리하여 이 불불부분의 기원과 성질에 관해, 또는 그 가치의 분배를 규제하는 법칙에 관해 명백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경제사의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큰 시기 - 즉 손 노동의 분업에 근거하고 있는 진정한 매뉴팩처의 시기와 기계의 사용에 근거하고 있는 근대적 공업의 시기 - 사이의 구별이 없어졌다. 그러므로 근대적 자본주의 생산을 인류 경제사의 과도적 단계로 보는 이론은 [이 생산형태를 영원하고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저술가들의 상용용어와는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ㅂ판, 29~30; M38)


고전파 경제학이 기존 용어의 틀에 갇힘으로써 이윤과 지대 개념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불불부분(잉여생산물)을 파악하지 못한 점을 말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를 써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 외 판본들에서는 모두 '그러나'로 썼다. 일판에서는 "しかしながら"(그러나), MIA 원문에서는 however. 아래 인용 부분에서도 "끝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정도로 보면 되겠다. 


1825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정체 · 번영 · 과잉생산 · 공황의 10년 주기의 순환은 사실상 끝난 것같이 보이고, 우리는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이라는 절망의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 것 같다. (ㅂ판, 31; M40)


The decennial cycle of stagnation, prosperity, over-production and crisis, ever recurrent from 1825 to 1867, seems indeed to have run its course; but only to land us in the slough of despond of a permanent and chronic depression. (MIA)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 · 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ㅂ판, 31~32)라는 주장에 대해서. 제1판 서문에서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이다.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ㅂ판, 4)라고 한 부분과도 관련이 있다.  


영국 자본주의는 인류 전체의 세계사의 발전방향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자본』의 서문에서 "산업 발전이 보다 앞선 나라는 발전이 뒤처진 나라에 그저 이 나라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발전단계설은 초기의 맑스 이래의 것이다. 하지만 만년의 맑스는 서구 나라들 이외의 국가들과 지역을 연구하고, 자술리치에게 보내는 서간이나 『공산당 선언』 러시아어판 서문에서 『자본』의 적용범위를 서구에 한정한다고 분명히 언급했다. 독일인인 맑스는 독일의 현재와 장래를 F. 리스트처럼 독일의 특수 이해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서구 안에 독일을 위치지어 특히 영국에서 독일의 미래상을 통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맑스사전』, 310)

 

 

2. 제4판 서문(1890)


제4판 서문에서 엥겔스는 제4판에서 수정한 본문과 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나서 마르크스와 브렌타노 사이에 있었던 인용의 정확성을 둘러싼 논쟁과 마르크스 사후에 세들리 테일러가 제기하면서 다시 벌어진 논란을 꽤 자세하게 소개한다.  (인용, 정말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무서운 것. 결론을 정리하면 그 소인배들의 음모는 씨도 안 먹히는 것이었다는...)


- ㄱ판에는 하단 각주가 모두 저자의 주(1, 2. 3... 번호)로 처리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4판 서문에는 저자(필자인 엥겔스)의 주가 없으며, 모두 MEW판 편집자의 주이므로 *, ** 등으로 처리해야 한다.


- ㄱ판 77, ㅂ판 34쪽(M42)에서 "리처드 존스에게서 인용한 부분만은 그 원본을 찾아낼 수 없었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이 책의 제목을 잘못 썼던 것 같다"에 달린 日註: 

* 엥겔스의 착오인 듯하다.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존스의 저서에서 인용하고 있다. 


- ㄱ판 78, ㅂ판 35(M42), 핸서드(Hansard)의 속기록에 대한 日註: 

* 핸서드상회(商會)가 발행한 영국 의회 회의록.


- "꼬마 라스커"와 "베벨"에 관하여. 

베벨(1840~1913)은 독일의 사회주의적 정치가로 수공업 직인으로 일하다가 리프크네히트의 영향을 받아 1869년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 창립에 참가했으며, 1871년에 제국의회 의원에 선출된 사람이라 한다. "파리 코뮌에 대해 의회에서 연대를 표명해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대역죄 혐의로 2년 금고형을 받는다"(『맑스사전』, 187). 아마 이때 라스커와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ㄱ판에는 관련 후주가 있는데 후주 내용은 이렇다. 

"1871년 11월 8일 제국의회에서 국민자유당의 라스커 의원은 베벨과의 논쟁에서, 만약 독일 노동자들이 파리 코뮌의 사례를 본받으려고 한다면 "정직한 유산(有産) 시민들이 곤봉으로 그들을 때려 죽일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연사는 이 표현을 공표할 결심을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속기록에는 [...] "그들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진압할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베벨이 이 변조를 폭로하여, 라스커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ㄱ판, 679)

  라스커가 "유산 시민들이 독일 노동자들을 때려 죽일 것"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日註는 위와는 약간 내용이 다르다:     

* 반동적인 국민자유당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라스커는, 독일 노동운동의 지도자 베벨의 파리 코뮌 옹호에 반대하여 그를 죽이겠다고 국회에서 연설했다. 속기록에서 그것을 삭제한 것을 베벨이 들추어내서 노동자들로부터 '꼬마 라스커'라는 냉소를 받은 일을 가리킨다.  

라스커는 그렇게 자기 말을 "날조"("발명")한 것이고 글래드스턴은 의회의 관습에 따라 "위험한 부분을 삭제"한 것이라는 얘기다. 마르크스가 <타임스>와 핸서드 속기록을 비교하여 자신의 인용에 문제가 없음을 밝히고 난 뒤 마르크스와 익명의 인물(브렌타노) 사이의 논란은 가라앉았다가, 마르크스 사후에 세들리 테일러가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온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진상*1이었다! 그리고 브렌타노가 『콘코르디아』를 통해서 벌인 이 익명의 싸움은 케임브리지 생산협동조합의 환상에 찬란하게 반영되었던 것이다! 이 독일 공장주협회의 성 게오르크*2는 '능숙한 공격'으로 이처럼 칼을 휘둘렀고*3, 지옥의 용 마르크스는 '곧바로 궁지'에 빠져 그의 발 아래에서 죽어버렸던 것이다! (ㄱ판, 82; M45)


그런데 이 모든 아리오스토*4적 전기는 우리의 성 조지의 탈출구를 은폐하려는 데 불과하다. (ㅂ판, 38; M45)


- 각각의 日註: 

1.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 '서재'에서 파우스트의 고백 참조. 

일판에서는 "이것이 삽살개의 정체"(파우스트 보기)로 되어 있다. 이 말은 제10장(ㄱ판으로는 제8장) 노동일(관련 글 보기)에서도 나온다. 

2. 성 게오르기우스. 로마의 순교자. 악한 용을 퇴치하고 왕녀를 구했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피디아 참조. 

3.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제1부 제2막 제4장에서 폴스타프의 대사 참조. 

폴스타프의 대사는 찾지 못했고, 일단 폴스타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여기. 작품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꽤 매력적인 캐릭터인 듯하다. 뚱뚱하고 방탕한 늙은이이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악인 같은... 

4.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 15~16세기 이탈리아 시인. 기독교군과 이슬람군의 전투에 용사 오를란도의 사랑을 섞어 넣어서 신앙의 승리를 그린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가 대표작. 

더 자세한 것은 여기


- 번역 문제. 

"그 이후로 세들리 테일러는 브렌타노의 논쟁적 저작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ㄱ판, 84; M46)에서 "논쟁적 저작"은 좀 어색하다. 브렌타노가 책으로 논쟁을 벌인 것도 아니고. 일판에서는 "문필상의 전투보고"라고 나오는데 브렌타노와 마르크스가 이런저런 글로 논쟁한 것이니 '전투보고'가 더 낫다.  


 



* 글 작성일: 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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