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시작은 이것.






참고 자료 찾아 읽어봄. 


레닌은 4월에 페트로그라드의 핀란드역에 도착합니다. 레닌은 러시아로 오는 열차 안에서 2페이지 정도의 노트를 작성합니다. 「4월 테제」라는 텍스트입니다. 「4월 테제」의 핵심은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축출하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집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의 현 단계에서 부르주아혁명이 아니라 곧바로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4월 테제」의 또 다른 중요한 주장은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혁명을 주도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혁명적 조국방위를 위해서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레닌은 그것을 거부하고 평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이 혁명을 통해서 권력을 장악해야 하고, 토지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정주의자들이 쓰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명칭 대신 공산주의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곧바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해야 한다는 '연속혁명론'의 입장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합니다. 

―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 238쪽, 강조는 저자. 붉은색 강조는 인용자



'4월 테제'를 찾아봄.  


테제 


1) 르보프와 그 일당의 새 정부 아래서 그 정부의 자본가적 본질로 인해 러시아 쪽에서 볼 때 의문의 여지 없이 약탈적 제국주의 전쟁인 채로 남아 있는 전쟁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 “혁명적 방위주의”에 대한 조금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다.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다음과 같은 조건 위에서만, 혁명적 방위주의를 실제로 정당화할 혁명전쟁에 동의할 수 있다 : (a) 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 및 프롤레타리아트와 제휴한 농민의 극빈층에게 넘어갈 것; (b) 모든 합병 영토가 말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포기될 것; (c) 모든 자본주의적 이익들과의 완전한 단절이 실제로 행해질 것.

전쟁을 정복의 수단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필연으로써 받아들이는, 혁명적 방위주의에 대한 광범한 계층의 대중적 신봉자들의 의심할 바 없는 정직성을 고려할 때, 그들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특별히 철저하고 끈질기게 그리고 참을성 있게 그들에게 그들의 오류를 설명하고 자본과 제국주의 전쟁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할 수 없는 연관을 설명하며, 자본을 타도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강화, 폭력에 강요받지 않는 강화로써 전쟁을 끝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견해를 위한 가장 광범위한 캠페인이 전선의 군대 내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형제적 친교.


2) 러시아의 현 상황의 구체적 특정은 나라가 - 프롤레타리아트의 불충분한 계급의식과 조직화로 인해 부르주아지의 수중에 권력이 쥐어졌던 - 혁명의 첫 번째 단계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와 극빈층 농민들의 수중에 권력이 쥐어져야 하는 혁명의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행은 한편으로 합법적으로 숭인된 최대치의 권리(러시아는 지금 세계의 모든 교전국들 가운데 가장 자유롭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을 향한 폭력의 부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화와 사회주의의 저 최악의 적들인 자본가들의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합리한 신뢰로 특정지어진다.

이 독특한 상황은 우리에게 이제 막 정치 생활에 눈뜬 전례없이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대중들 사이에서의 당 사업의 특수한 조건에 적응할 능력을 요구한다.


3) 임시정부를 결코 지지해서는 안 된다; 임시정부의 모든 약속, 특히 합병 영토의 포기에 관한 약속이 전적으로 거짓임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 정부, 자본가들의 정부가 제국주의 정부이기를 그만둘 것이라는 허용될 수 없는, 환상을 낳는 “요구” 대신에, 폭로를.


4)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에 굴복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그러한 영향력을 퍼뜨려온 인민사회주의자들 및 사회주의-혁명당원들부터 조직위원회(츠헤이제, 체레텔리 등). 스테클로프 등등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프티부르주아 기회주의 분자들의 블록에 비하여, 대부분의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내에서 우리 당이 소수파, 지금까지는 작은 소수파에 처해 있다는 사실의 인정.

대중들이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의 혁명 정부임을,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이 정부가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에 굴복하는 한 그들의 전술의 오류들에 대한 참을성 있고 체계적이며 집요한 설명, 대중들의 실제적 필요에 특별히 적합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임을 알게 해야 한다. 

우리가 소수파에 처해 있는 한, 우리는 오류들을 비판하고 폭로하는 활동을 수행해야 하며 동시에 우리는 전체 국가권력을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로 이양하여 인민들이 경험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극복하게 할 필요성을 설교해야 한다.


5) 의회제 공화국이 아니라 -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에서 의회제 공화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퇴보가 되리라 - 전국에 걸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노동자, 농업 노동자, 그리고 농민 대표 소비에트의 공화국.

경찰, 군대, 관료제의 폐지.*

모든 공무원, 선출되고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는 모든 공무원의 급료는 유능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초과하지 말 것.


6) 농업 강령에서 강조점을 농업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로 옮길 것. 모든 토지재산의 몰수.

나라 안의 모든 토지의 국유화, 토지가 지역의 농업 노동자 및 농민 대표 소비에트에 의해 처분되게 할 것. 독립적인 빈농 대표 소비에트의 조직화. 농업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통제 아래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각각의 대토지마다 (지역적 조건과 그 밖의 조건에 맞추어 지역 기관들의 결정에 따라 100 내지 300 데샤틴 규모의 범위로) 모병 농장을 설립.


7) 나라 안의 모든 은행들의 단일한 국립 은행으로의 즉각적인 합병, 그리고 국립 은행에 대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에 의한 통제의 제도화.


8) 우리의 즉각적인 임무는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회적 생산과 생산물의 분배를 즉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통제 아래로 가져오는 것일 뿐이다.


9) 당의 임무:

  (a) 당 대회의 즉각적 소집;

  (b) 당 강령의 개정, 주로:

     (1)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의 문제에 관하여;

     (2) 국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코뮌국가”**를 위한 우리의 요구에 관하여;

     (3)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의 최소 강령의 수정;

  (c) 당 이름의 변경. ***

10) 새로운 인터내셔널

우리는 혁명적 인터내셔널, 사회-쇼비니스트들에 대향하는 그리고 “중앙파”****에 대항하는 인터내셔널을 창건하는 데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 즉 상비군을 전인민의 무장으로 대체시키는 것.

** 즉 파리코뮌이 원형이었던 국가.

*** 세계 전역에 걸쳐 그 공식적 지도자들(“방위주의자들”과 동요하는 “카우츠키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배신하고 부르주아지에 투항해버린 “사회민주주의” 대신에, 우리는 스스로를 공산당이라고 불러야 한다. 

**** 국제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 “중앙파”란 쇼비니스트들(=“방위주의자들”)과 국제주의자들 사이에서 동요하는 경향, 즉 독일의 카우츠키와 그 일당, 프랑스의 롱게와 그 일당, 러시아의 츠헤이제와 그 일당, 이탈리아의 투라티와 그 일당, 영국의 맥도날드와 그 일당 등이다. 



- 『레닌저작집 7-1』, 전진, 23~26(붉은색 강조는 인용자)



"이 모든 글(1871~75년 사이 <인민국가>에 발표된 논문들)에서, 특히 마지막 글에서 내가 항상 나 자신을 사민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로 명명하고 있음을 사람들은 인지할 것이다. 이는 당시 여러 국가들에서, 사회를 통한 전체 생산수단의 인수를 결코 자신의 깃발에 써놓지 않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라고 명명했기 때문이었다. (…) 독일에서는 라쌀레 추종자들이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라고 불렀다. (…) 따라서 맑스와 나로서는 우리의 특별한 관점을 특징짓기 위해 그런 분명치 못한 표현을 결코 선택할 수 없었다.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그 경제 강령이 단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적일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공산주의적이고, 또 국가 전체의 극복, 따라서 또한 민주주의의 극복이 그 정치적 최종 목표인 당에 이 용어[사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용어는 그만 좋다고 하자. 당은 발전하고 있는데, 명칭은 그대로 남아있다."

- F. Engels, “Vorwort zur Broschüre Internationales aus dem ‘Volksstaat’(1871~75)”, MEW Bd. 22, p. 417-418.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540



 


Comrades, as you know, a fairly comprehensive Party discussion on changing the name of the Party has developed since April 1917 and the Central Committee has therefore been able to arrive at an immediate decision that will probably not give rise to considerable dispute—there may even be practically none at all; the Central Committee proposes to you that the name of our Party be changed to the Russian Communist Party, with the word “Bolsheviks” added to it in brackets. We all recognise the necessity for this addition because the word “Bolshevik” has not only acquired rights of citizenship in the political life of Russia but also throughout the entire foreign press, which in a general way keeps track of events in Russia. It has already been explained in our press that the name “Social-Democratic Party” is scientifically incorrect. When the workers set up their own state they realised that the old concept of democracy—bourgeois democracy—had been surpassed in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our revolution. We have arrived at a type of democracy that has never existed anywhere in Western Europe. It has its prototype only in the Paris Commune, and Engels said with regard to the Paris Commune that it was not a state in the proper sense of the word.[25] In short, since the working people themselves are undertaking to administer the state and establish armed forces that support the given state system, the special government apparatus is disappearing, the special apparatus for a certain state coercion is disappearing, and we cannot therefore uphold democracy in its old form.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8/7thcong/09.htm)


동지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당명의 변경에 대한 토론이 1917년 4월부터 꽤 포괄적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그에 따라 중앙위원회는 큰 논란을 일으키진 않을 - 실제로도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 당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중앙위원회는 우리 당의 이름을 '볼셰비키'를 괄호 안에 붙여 '러시아 공산당(the Russian Communist Partyㆍ약자로 'R.C.P.(B.)'가 된다-옮긴이)'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볼셰비키'라는 이 첨자, 단지 러시아의 정치 생활에서뿐 아니라 러시아에서의 사태 진행에 따라 대개 해외 외국 언론에서도 시민권을 획득한 이 단어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회민주당'이라는 이름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신문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국가를 건설하면서 우리 혁명의 진행과정이 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옛 관념을 넘어섰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서유럽 어디에도 존재한적 없었던 형식의 민주주의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의 원형은 오직 파리코뮌에서만 찾아볼 수 있고 엥겔스는 파리코뮌을 옹호하며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각주 25] 요컨대 노동인민 스스로 국가의 관리에 착수하고 획득한 국가 체제를 지키기 위한 무장에 나서면서 이 특별한 정부기구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국가의 강제를 위한 이 특별한 기구들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그 옛 형식으로 옹호할 수 없습니다. (24601님의 번역)



사진의 글에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독재의 길로 접어든 볼셰비키가 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부분은 최소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길로 접어든 볼셰비키가 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정도로는 써야 하지 않을까.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사람에게는 이조차도 개소리겠지만... 여하간 저자의 정치적 견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사실관계와 용어의 맥락을 무시한, 게다가 반공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방식의 왜곡이라는 생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는 정부 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 세력인 정치 체제입니다. (...)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정치 체제는 부르주아지 독재이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는 정치 체제입니다. 19세기에는 지금 보기에는 이상한 용어,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독재'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지금 보면 용어모순이지만 이것을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통치'라고 읽으면 이해가 됩니다. (...) 러시아혁명 이후에 반공주의자들이 러시아혁명을 비판하기 위해서 dictatiorship이라는 용어를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에 주로 의존하는 전제정치'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원래 dictatorship과 democracy는 범주가 다른 말입니다. dictatorship은 통치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democracy는 통치의 성격을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범주가 다른 말을 같은 범주 안으로 옮겨 놓고, dictatorship과 democracy를 다 통치의 성격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꾼 것입니다. (...) 그래서 공산주의는 독재를 옹호하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므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반의어라는 냉전 시대의 개념쌍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 33~34)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적 제복  (5) 2016.12.16
자본론이라는 문학  (0) 2015.10.10
자유무역 문제에 대한 연설(1848)  (0) 2012.09.26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1844)  (0) 2012.09.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