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ㅂ판: 제8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노동은 한편으로는 가치를 창조하고 한편으로는 가치를 보존 또는 이전한다. 당연하게도 따로따로 아니고 동시에. 


그의 노동은 동일한 시점에서 한편의 속성으로는 가치를 창조하고, 다른 한편의 속성으로는 가치를 보존 또는 이전해야 하는 것이다. (ㄱ판, 292; M214)


어떻게 이전하는가. 방적공은 실을 방적하고, 직물공은 베를 직조하고... 그런 각각의 형태를 띤 구체노동으로써 그들은 생산수단의 사용가치를 새로운 생산물로 옮긴다. 


노동자가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를 보존하고 또 그것을 가치의 한 구성 부분으로 생산물에 이전하는 것은 그가 노동 일반을 부가하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부가된 노동의 특수한 유용성, 즉 그 특수한 생산형태를 통해서이다. (ㄱ판, 292; M215)


방적공의 노동이 면화와 방추의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시키는 것은 그것이 가진 추상적․일반적 속성을 통해서이며[즉 인간 노동력의 지출이라는 의미를 통해서이며], 그 노동이 이들 생산수단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시키고 그것들의 가치를 생산물 속에 보존하는 것은 그 노동이 가진 방적과정으로서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용가치적 성격을 통해서이다. 그리하여 동일한 시점에서 노동의 결과는 양면성을 띠게 된다. 

  노동의 양적 부가를 통해서는 새로운 가치가 부가되며 부가된 노동의 질을 통해서는 생산수단의 본래 가치가 생산물 속에 보존된다. (ㄱ판, 293; M215)


요약하자면 이렇다.

구체적 유용노동 - 생산수단의 가치를 보존하고 생산물로 이전함 - 부가된 노동의 질을 통해서

추상적 인간노동 - 새로운 가치를 부가함 - 노동의 양적 부가를 통해서


『자본론』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인 노동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heesang님의 “(8) 마르크스의 결정적 순간: 세계 최초로 노동의 이중성을 발견하다”, “(87) 물건이 먼저다”, 이 두 글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은 내가 처음으로 지적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ㅂ판, 52; M56, 제1장 상품, 제2절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리카도 자신은 물론 리카도 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경제학자도 노동의 양면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따라서 가치형성에서 이 양면이 연출하는 역할의 차이를 전혀 분석한 적이 없었다 (ㄱ판, 298; M219, 각주 21)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인간이 매일 24시간씩 죽어가듯이, 기계 등의 노동수단도 계속 그것의 사용가치를 새로운 생산물에 이전한다. 


노동과정의 어떤 요소[즉 어떤 생산수단]는 노동과정에는 전체가 투입되지만 가치증식과정*에는 일부만 투입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차이는 이들 과정의 물적 요소들을 통해 반영되고, 그런 반영은 같은 생산수단이 동일한 생산과정에서 노동과정의 한 요소로는 전체로 계산되고, 가치형성의 한 요소로는 일부만 계산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ㄱ판, 297; M219)


* 마르크스가 교정한 프랑스어판, 엥겔스가 교정한 영어판, 스페인어판, 러시아어판과 동유럽 각국어판에서는 '가치형성과정'으로 되어 있다.


ㅂ판에서는 “가치형성과정”이다. ㅂ판의 '가치형성과정'과 ㄱ판의 '가치증식과정'은 각각의 판본에 달린 각주 내용, 그리고 각각의 본문 다음 문단에서도 그대로 그렇게 쓰인다. 이 부분은 MIA가 MEW를 오역한 것이며, 번역상의 엄밀함은 떨어지지만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대립’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3편-6장길-불변자본과-가변자본-에서-번역과-용어-질문"을 참고할 것.


노동과정에 있는 생산수단은 자신이 원래 지닌 가치만큼을 생산물에 부가한다. 그렇게 생산수단의 가치는 “윤회”하듯 생산물에서 다른 생산물로 옮겨 간다. 이렇게 가치를 부가하는 것은 원래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이루어진다. 


생산수단의 가치는 단지 생산물의 가치 속에 재현(再現)되는 것이지 정확히 말해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되는 것은 원래의 교환가치가 재현하는 바로 그 새로운 사용가치이다. (ㄱ판, 301; M222)  


힘의 가치로 재현되는 것은 생활수단이 아니라 그 가치이다. 똑같은 양의 생활수단은 - 그것들이 가령 절반 값밖에 되지 않는다 치더라도* - 똑같은 양의 근육과 골격 등[요컨대 동일한 힘]을 생산하지만, 그것이 동일한 가치가 있는 힘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ㄱ판, 301 각주 25; M222)


* 영어판, 프랑스어판에는 “그것들이 절반 가격밖에 들지 않는 경우에도”로 되어 있다. 


일판에는 “그것들이 절반 비용밖에 들지 않는 경우에도”이다. 예를 들어 같은 빵 1개가 100원이든 50원이든 사용가치는 같으므로 그것이 생산해내는 힘은 같지만, 100원 받던 노동자가 50원 받을 때 그 노동력의 가치는 절반이 된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가치의 등가를 재생산한 시점[예를 들어 6시간의 노동에 의해 3실링의 가치를 부가한 시점]에서 생산과정이 중단된다고 하자. 이 가치는 생산물가치 가운데, 생산수단의 가치로 이루어진 구성 부분을 넘는 초과분을 이룬다. 이 가치는 이 과정의 내부에서 발생한 유일한 원가치(原價値. Origialwert)*이며 생산물가치 가운데 이 과정에 의해 생산된 유일한 가치 부분이다. (ㄱ판, 302; M223)


* 러시아어판, 중국어판에는 “신가치(新價値)”로 되어 있다. [일판에는 “본래의 가치”]


이 과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를 들어 12시간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노동력의 활동을 통해서 노동력 자신의 가치가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일정한 초과가치가 생산된다. 이 잉여가치는 생산물가치 가운데 소비된 생산물 형성요소들[즉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이룬다. (…) 생산수단[즉 원료나 보조재료 또는 노동수단]으로 전화하는 자본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크기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불변자본 부분 또는 더 간단하게 줄여서 불변자본(konstantes Kapital)이라고 부른다.

  반면 자본 가운데 노동력으로 전화한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한다. 이 부분은 자신의 등가와 그것을 넘는 초과분[즉 잉여가치]을 재생산하는데, (…) 자본 가운데 이 부분은 하나의 불변적인 크기에서 가변적인 크기로 끊임없이 전화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가변자본 부분 또는 더 간단하게 줄여서 가변자본(variables Kapital)이라고 부른다. 노동과정의 관점에서는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로[즉 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구별되는 자본의 구성 부분이 가치증식과정의 관점에서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구별된다. (ㄱ판, 302~03; M223)


일판과 ㅂ판에서는 “객체적/주체적”이다. 위 내용을 요약하면 

- 불변자본: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하지 않음. 생산수단(원료, 보조재료, 노동수단). 

- 가변자본: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함. 노동력. 자신의 등가와 그 초과분(잉여가치)을 재생산.

- 자본요소들은 노동과정에서 보면 생산수단/노동력(객체적/주체적 요소)으로 구별되고, 가치증식과정에서 보면 불변자본/가변자본으로 구별된다. 




(2013. 11. 29 다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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