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의 생성

(ㅂ판: 29장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의 발생)




우리는 지금까지 보호받을 길 없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적 창출, 그들을 임노동자로 전화시킨 피나는 훈련, 노동의 착취뿐 아니라 자본축적도 경찰력을 이용하여 증진시킨 군주와 국가의 비열한 행위*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이제 자본가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농촌 주민들에 대한 수탈이 직접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대토지 소유자뿐이기 때문이다. 차지농업가의 발생에 관해서 우리는 그저 더듬거리듯 모색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차지농업가의 발생은 몇 세기에 걸쳐 완만하게 진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ㄱ판, 997; M770)


* “군주와 국가의 행동”은 독일어로 ‘대판 싸우는 정치극(政治劇)’을 의미하는 예로부터 쓰인 관용구이지만 마르크스는 여기서 말 그대로의 의미로 썼다. 


프롤레타리아는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그렇게 수탈과 폭력으로 창출되었다면, 자본가는 어디서 나왔는가. 이 절의 제목은 ㅂ판이나 ㄱ판이나 거의 같지만 MEW의 원문을 보면 “Genesis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이다. 잘 모르겠지만 ‘자본가 생성의 기원’쯤 될까? 자본가의 창세기. 일판 제목은 “자본주의적 차지농장경영자의 창생기(創生記)”. 그러니까 역서는 모두 제목에서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의 생성”이라고 굳이 차지농업가임을 명시했다. 자본가의 시작은 차지농업가였다는 것이겠지. 


강조 부분은 판본마다 다른데, ㄱ판은 겨우 더듬어볼 수 있다는 뉘앙스이고 ㅂ판은 매우 확실하게 “정확히 지적할 수 있다”고 했다. 일판은 “말하자면 모색할 수 있다(いわば模索することができる)”로,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독어를 모르니 장담하긴 어렵지만, 몇백 년 동안 이루어진 역사적 과정을 과연 그리 쉽고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을까 싶은데... 이때의 ‘모색한다’, 즉 더듬어 찾는다는 의미는 오랫동안 진행된 그 과정을 더듬어볼 수는 있다는 조심스러운 의미가 아닐까... 


영국에서 차지농업가의 최초 형태는 자신이 곧 농노였던 베일리프이다. 그의 지위는 고대 로마의 빌리쿠스*와 비슷하지만 세력범위는 그보다 좁았다. (…) 그는 곧 메터예이[즉 분익소작농]로 발전한다. (…) 영국에서는 이 형태가 곧바로 사라지고 본래적인 의미의 차지농업가 형태가 다시 그 뒤를 잇는다. 본래적인 의미의 차지농업가란 임노동자를 사용해 자신의 자본을 증식시키고 잉여생산물 가운데 일부를 화폐 또는 현물로 지주에게 지대로 지불하는 형태를 말한다. (ㄱ판, 997; M771)


* 본서(일판) 293쪽 원주 43 참조. 


빌리쿠스는 이미 제2편 제4장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제3절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각주 43(ㅂ판 제6장 각주 6)에 나온 바 있다. “고대 로마에서 농업노예의 우두머리를 차지한 관리자”로 “노예보다 쉬운 일을 한다는 이유에서 노예보다 못한 대우(임금)”를 받았다. 그랬던 빌리쿠스와 비슷한 농노 베일리프가 나중에는 차지농업가가 되어 부를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 차지농업가가 부유해지는 데는 몇 가지 역사적 계기가 작용했다. 


1470년경에 시작된 농업혁명은 16세기의 거의 전 기간을 통하여(마지막 10여 년은 제외하고) 지속되었다. (…) 16세기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계기가 부가되었다. (…) 귀금속의 가치 저하와 이에 따른 화폐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은 차지농업가들에게 황금 열매를 가져다주었다. (…) 이 화폐가치의 하락은 무엇보다도 임금의 하락을 가져왔으며, (…) 그가 지불해야 하는 지대는 이전의 화폐가치로 계약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임노동자와 지주를 동시에 희생시키면서 부를 쌓아올렸다. (ㄱ판, 998~99; M771~72)


“10여 년”은 오역이다. ‘20~30년’으로 고쳐야 한다.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사자(獅子)의 몫*1(Löwenanteil: 가장 큰 부분 - 옮긴이)을 중개인이 거두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종교에서 신은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자’*2(예수 그리스도 - 옮긴이)에 의하여 뒷전으로 밀려나고 ‘매개하는 자’는 다시 목사 - 목사는 선한 목자*3(예수 그리스도 - 옮긴이)와 그의 양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중개자이다 - 에 의해 밀려난다. (ㄱ판, 999, 각주 229; M772)


*1 『이솝 우화집』 제207 "사자와 당나귀"와 제209 "사자와 당나귀와 여우"에서 유래한 말로, 강자가 강자의 권리에 의해 정당하게 자기 것으로 하는 파렴치한 큰 몫. 

*2 신약 히브리서 8:6, 9:15, 12:24 참조. 

*3 신약 요한복음 10:11 참조. 


ㄱ판 제23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 거의 마지막쯤 되는 958쪽(ㅂ판은 제25장, 973)에서 "극소수 대지주가 전국의 연간 총지대 수입 가운데 삼켜버리는 몫은 너무나 막대한 액수에 달"한다는 부분인데, 여기서 이 '막대한 몫'이 원문의 “Löwenanteil”이다. 이 말이 각주 229에 또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히브리서 8:6)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9:15)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브리서 12:2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1)





제5절 공업에 대한 농업혁명의 반작용. 산업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의 형성

(ㅂ판: 제30장 공업에 대한 농업혁명의 영향. 산업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의 조성)




끊임없이 반복해서 충격적으로 이루어진 농촌 인민에 대한 수탈과 토지로부터의 축출은 완전히 동직조합적 관계 외부에 존재하는 프롤레타리아 무리를 반복적으로 도시 공업에 공급했는데, 이런 전반적인 호조건은 늙은 애덤 앤더슨(…)으로 하여금 자신의 상업사* 저술에서 신의 섭리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 경작자 수가 감소했는데도 토지는 이전과 같거나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생산물을 산출하고 있었다. 이것은 토지소유관계의 혁명이 경작방법의 개량과 협업의 대규모화, 생산수단의 집적 등을 동반했기 때문이며, 또한 농촌 임노동자의 노동강도가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위해 노동할 수 있는 생산영역도 갈수록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ㄱ판, 1000; M773)


* 『상업의 기원의 역사적 ‧ 연대기적 유래』, 전 2권, 런던, 1764.


토지에서 축출된 농민이 도시 공업으로 유입되고 따라서 경작자 수가 줄었음에도 농업혁명은 토지의 생산물 양을 늘린다. 그 생산물은 가변자본의 요소가 되어 농촌 임노동자의 임금으로 구매되거나(식량), 생산원료로서 불변자본의 요소가 된다.  


아마(亞麻) 방적공장에서 지출되는 특별한 노동은 이전에는 수많은 농민 가족의 특별 수입이나 세금 - 프리드리히 2세 시대에는 프로이센 왕을 위한*1 - 으로 실현되던 것이었다. 이제 그것은 몇몇 극소수 자본가의 이윤으로 실현되고 있다. (…) 이전에 방적공과 방직공을 위한 독립적 생존수단이던 방추 ․ 직기 ․ 원료 등은 이제 모두 이들 노동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들에게서 불불노동을 착취해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화하였다. (…) 이것들이 수많은 소규모 생산장소들을 합친 것이며 또 다수의 소규모 독립생산자들에 대한 수탈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편견 없는 눈으로*2 관찰해보면 진실을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ㄱ판, 1001; M774)


*1 “프로이센 왕을 위한”은 ‘아무런 담보 없이’라는 뜻.

*2 프랑스어판에는 “민중의 직감(直感)”으로 되어 있다. 


ㄱ판의 “특별한”은 ㅂ판에는 “추가적” 일판에는 “여분의”로 되어 있다. 농민들이 임노동자가 되기 전에는 방적공장에서 부업처럼 일을 하면서 여분의 수입을 얻었지만 분산된 매뉴팩처에서 대규모 매뉴팩처로 변화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과거에 농가는 생활수단과 원료를 생산 ․ 가공하고 그 대부분을 자신이 소비하였다. 이제 이들 원료와 생활수단은 상품이 된다. (…) 지금까지는 자신의 재량껏 노동하던 수많은 소생산자들에 의존해온 다수의 분산된 고객이 이제는 집중된 하나의 커다란 시장 - 산업자본에서 조달을 받는 - 으로 바뀌었다. 이리하여 과거의 자영농민에 대한 수탈과 그들의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분리와 더불어 농촌 부업의 파괴, 매뉴팩처와 농업의 분리과정이 진행된다. 그리고 오로지 농촌 가내공업의 파괴를 통해서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필요로 하는 한 나라의 넓고 튼튼한 국내시장이 만들어진다. (ㄱ판, 1003; M775)


그럼에도 본격적인 대공업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매뉴팩처 시대에는 토지 경작을 부업으로 하고 공업노동을 본업으로 하는 소농민계급이 생기는 등 연구자들이 보기에는 혼란스러운 현상들이 보인다. 그러나 결국 대공업은 “산업자본에 국내시장 전체를 정복하여 바쳤다”.   


대공업이 기계 사용을 통해 자본주의적 농업에 불변자본의 기초를 제공하고, 엄청난 수의 농민대중을 철저하게 수탈하는 것은 물론 가내적 ․ 농촌적 공업(…)의 뿌리를 흔들어놓음으로써 비로소, 가내적 ․ 농촌적 공업과 농업은 완전히 분리된다. (ㄱ판, 1004; M776)


“너희들은 방차와 쟁기뿐만 아니라 방추와 멍에도 분리시키고, 그리하여 공장과 구빈원, 신용과 공황 그리고 농민과 상인이라는 두 개의 적대적인 국민을 갖게 될 것이다”*(데이비드 어커트) (ㄱ판, 1004 각주 236[ㅂ판 1029 각주 7]; M776~77)


* 프랑스어판에는 이 인용이 본문이 되고 인용 뒤에 다음 문장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 숙명적인 분리의 날로써, 노동의 집단적 힘의 필연적 발전이, 또한 구습에 사로잡힌 분할적 생산으로부터 과학적인 결합적 생산으로 전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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