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절 산업자본가의 생성

(ㅂ판: 제31장 산업자본가의 발생)




산업자본가의 생성은 차지농업가의 생성과정처럼 점진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의심할 나위도 없이, 많은 소규모 동직조합 장인들과 더 많은 수의 소규모 독립수공업자들 그리고 일부 임노동자들까지도 소자본가가 되어, 이들이 임노동에 대한 착취를 점점 확대시켜가면서 그에 따른 축적을 통하여 문자 그대로의 자본가가 되었다. (ㄱ판, 1005; M777) 


*오늘날 사회의 모든 부는 일차적으로 자본가 수중에 먼저 들어간다. (…) 이제 자본가는 전체 사회적 부 가운데 첫 번째 소유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법률이 그에게 이 소유권을 부여해준 것은 아니다. (…) 소유에서 발생한 이런 변화는 자본에 대한 이자의 획득을 통해 일어났다. (호지스킨의 말 인용, ㄱ판, 1006; M778)


* 프랑스어판에는 이 인용문 앞에 다음 문장이 있다. “상업자본이 한 역할을 유념하려 하지 않는 어떤 영국인 작가는 현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호지스킨이 묻고 있는 ‘자본가의 소유권’은 법률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중세부터 이어져온 자본의 두 가지 형태, 고리대자본과 상인자본이 그 근본 원인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은 산지의 발견, 원주민의 압살과 노예화 그리고 광산노역, 동인도제도의 정복과 약탈의 시작, 아프리카 흑인사냥의 상업화 등은 자본주의적 생산시대의 새벽을 알리는 주요한 특징들이다. 이러한 목가적인 과정이 본원적 축적의 주요 계기를 이루었다. (ㄱ판, 1007; M779)


마르크스는 “목가적인 과정”이라고 일부러 반어적 표현을 쓰지만 사실 이게 얼마나 피에 물든 잔인한 과정인지는 계속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본원적 축적은 스페인 ․ 포르투갈 ․ 네덜란드 ․ 프랑스 ․ 영국 등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주요 방법은 “식민제도, 국채제도, 근대 조세제도, 보호무역제도”이다. 이 중에 대표적으로 식민제도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폭력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방법들은 모두 봉건적 생산양식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촉진하고, 그 과도기를 단축시키기 위하여 국가권력〔즉 사회의 집중되고 조직화된 폭력〕을 이용하였다. 폭력은 새로운 한 사회를 잉태하고 있는 모든 낡은 사회에서 그 산파 역할을 한다. 폭력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제적 힘*이다. (ㄱ판, 1007; M779)


* 프랑스어판에는 “경제의 대리인”.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인간도둑질 제도”가 있어서 소년들을 납치해 감옥에 가뒀다가 노예선에 태웠으며, 자바의 바뉴왕기는 1750년 8만이던 인구가 네덜란드의 약탈로 1811년 8천 명이 되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폭로하는 식민지에서의 “본원적 축적이 지니는 기독교적 성격” 부분은 그 ‘폭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근엄한 프로테스탄트의 대표자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1703년 자신들의 주 의회 결의에 따라 인디언의 머리가죽 1장 또는 인디언 포로 1명에 40파운드스털링 (…) 을 포상금으로 내걸었다. (…) 여자 포로와 아이 포로에는 50*파운드스털링, 여자와 아이의 머리가죽에는 50파운드스털링! 이 식민제도는 그때부터 수십 년 뒤, 그 사이에 본국에 반기를 든 경건한 필그림 파더스(…)의 후손들에게 앙갚음을 하였다. 이들은 영국인에게 매수당한 토착민들의 도끼에 맞아 살해당했다. 영국 의회는 살인 개와 머리가죽 벗기기에 대해 “신과 자연에서 부여받은 수단”이라고 선언하였다. (ㄱ판, 1010; M781)  


* 제3판 이후 50이라고 오기(誤記)됨. 〔ㄱ판은 그러니까 오기를 그냥 그대로 옮긴 셈이고, ㅂ판은 55라 되어 있다.〕 


식민제도는 마치 온실재배와 같은 방식으로 상업과 항해를 육성시켰다. ‘독점회사’*(루터가 붙인 명칭: M328의 주 206 참고-옮긴이)는 자본집적의 강력한 지렛대였다. 식민지는 성장하는 매뉴팩처에 판매시장을 보장해주고 시장독점을 통한 자본축적의 증대를 보장해주었다. (ㄱ판, 1010; M781)


* 본서(일판) 540쪽 원주 206과 역주 참조. 


위의 ‘독점회사’는 역주대로 제3편 제9장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에 이미 나온 바 있다. 일판의 편집자 주를 다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 루터의 『상거래와 고리대에 대하여』, 비텐베르크, 1524년(바이마르판, 제15권, 312쪽). 루터는 이 설교에서 국회의 독점 금지 결의에도 불구하고 방치되고 있는 ‘독점상회’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식민제도는 그에 따른 해상무역·상업전쟁과 더불어 국채제도의 온실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이 제도는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확립되었다. 국채, 즉 국가 - 전제국가이든 입헌국가이든 공화국이든 - 에 의한 부의 양도는 자본주의 시대의 특징을 이룬다. (…) 공적 신용은 자본의 사도신경이 된다. 그리고 국채제도의 성립과 더불어 국채에 대한 불신은 성령에 대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와 마찬가지로 간주된다. (ㄱ판, 1011~12; M782) 


* 신약성서 마태복음 12:31~32, 누가복음 12:10 참조.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1~32)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2:10)


국채는 "자본의 사도신경"이라... 기가 막히는 표현이다. 이러한 공적 신용, 국채는 “본원적 축적의 가장 튼튼한 지렛대”가 된다. 나아가 국채는 주식회사와 주식 매매, 근대적 은행 제도에 기여한다. 


국채와 함께 국제적인 신용제도도 생겨났는데, 거기에는 종종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본원적 축적의 한 원천이 숨겨져 있다. (…) 1707~76년에 네덜란드가 주력했던 사업의 하나는 거대한 자본의 대출, 특히 강대한 경쟁자였던 영국에 대한 대출이었다. 오늘날의 미국과 영국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출생증명서도 없이 나타나는 다수의 자본은 겨우 어제 영국에서 막 자본화한 어린이의 피다. (ㄱ판, 1013; M783~84) 


마지막 문장의 절묘한 비유에 잠시 또 기가 막히고... 이 문장은 ㅂ판에는 “오늘날 미국에 나타나고 있는 출처불명의 많은 자본은 어제 영국에서 아동들의 피가 자본으로 전환한 것이다”로 되어 있다. 말맛으로만 따진다면 ㄱ판이 낫다.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그렇게 서로 추월당하고 추월하며 이어지는 자본의 축적을 어린이와 갓난아기에 비유하는 셈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기가 막힌다. 


과중한 과세는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오히려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도를 처음으로 채택한 네덜란드에서는 위대한 애국자 비트(Witt)가 자신의 잠언에서 이 제도를 가리켜 임노동자를 순종 ․ 검약 ․ 근면케 하고 (…) 가장 훌륭한 제도라고 칭찬하였던 것이다.* (…) 우리의 논의와 관계가 있는 것은 이 제도가 임노동자의 상태에 끼친 파괴적인 영향보다도 오히려 이 제도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농민과 수공업자〔요컨대 모든 소규모 중간계급의 구성원〕에 대한 폭력적 수탈이다. (ㄱ판, 1014; M784)


* 드 라 쿠르트 『네덜란드와 프리슬란트의 정치적 준칙』, 1669. 영역(英譯), 런던, 1743, 제1부 24장, 92쪽 참조. 더빗은 이 책의 1부를 집필했으며, 또한 영역자이기도 하다. 


‘비트’라고 표기했지만 현재 네덜란드 표기법에 따르면 이 사람은 ‘얀 더빗Jan De Witt’이다. 브리태니커에서는 ‘위트’라고 했다. 표기가 제각각이지만 여하간 더빗이다. (현재 온라인 브리태니커의 네덜란드 표기법은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 않다.)


본원적 축적에 기여한 것으로 보호무역제도를 빼놓을 수 없는데, 중상주의 정책으로 유명한 콜베르도 이에 관련되어 등장한다. 


유럽 대륙에서는 콜베르*1의 선례에 따라 이 과정이 훨씬 단순화되었다. 이 나라에서 산업가의 본원적 자본은 그 일부가 국고에서 직접 나온 것이었다.*2 

미라보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7년전쟁*3 이전에 작센의 공업이 번영한 원인을 왜 그렇게 멀리서 구하려 하는가? 그것은 1억 8,000만의 국채이다. 


식민제도·국채·중과세·보호무역·상업전쟁 등 본래적인 매뉴팩처 시대의 이런 맹아들은 대공업의 유년기에 거대하게 성장하였다. 대공업의 탄생은 헤롯 왕의 대규모 아동약탈*4과 같은 방식을 통해서 축복을 받는다. (ㄱ판, 1015; M785) 


*1 17세기 프랑스 정치가. 재정개혁의 공을 인정받아 재정총감, 후에는 사실상의 재상이 됨. 동인도회사를 만들고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2 프랑스어판에는 이 문장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본원적 자본은 선대금이나 무상의 증여라는 형식하에 사기꾼에게 곧바로 흘러갔지만, 마법과 같은 재원은 자주 국고에서 나온 것이었다.” 


*3 1756~63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전쟁과 프랑스 ․ 영국 간 식민지 전쟁을 가리킨다. 


*4 본서(일판) 697~98 원주 144와 편집자 주 2 참조. 〔이 부분은 제4편 제13장 기계와 대공업 3절 중에 나온다. ㄱ판 545 각주 144 “공장제도의 초창기에 자본이 구빈원과 고아원에서 대규모로 자행했던 아동약탈”. "약탈"은 일판과 ㅂ판 모두 "유괴"다. 일판의 주를 다시 옮기면 “헤롯 왕: 유대의 왕.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모두 죽이기로 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2장 16~18절”. 〕 


도제들에게 옷과 음식을 제공하고 공장 근처에 있는 ‘도제 합숙소’에서 잠을 자게 하는 것은 고용주(곧 아동 도적)들의 관습이었다. (…) 그들은 과도한 노동으로 죽도록 혹사당했다. (…) 더비셔와 노팅엄셔 그리고 랭커셔 등, 공중의 눈에서 격리된 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골짜기는 고문과 때로는 살인이 난무하는 끔찍하고 살벌한 땅이 되어버렸다. (…) 그들은 ‘야간작업’이라는 관습을 만들어냈다. (…) 주간조는 야간조가 이제 막 떠난 침대로 기어들고, 아침에는 거꾸로 주간조가 막 떠난 침대에 야간조가 들어간다. 그래서 랭커셔에서는 침상이 결코 식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ㄱ판, 1016~17; M786)


영국은 원래 아프리카와 영국령 서인도제도 사이에서만 흑인무역을 경영하다가, 위트레흐트에서의 아시엔토 협약*1을 통해 아프리카와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도 흑인무역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스페인인들에게서 강탈했는데 (…) 노예무역은 본원적 축적을 위한 리버풀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노예무역의 핀다로스*2로서 리버풀이 떨친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ㄱ판, 1018; M787)


*1 16~18세기에 스페인이 아메리카의 자국령에서 흑인 노예 매매의 특권을 외국 정부 또는 외국인에게 공여한 협정. 

*2 그리스 서정시인. 그 시는 송시, 만가, 용가(踊歌) 등 다양한 분야에 미치지만 그중에도 올림픽 경기에서의 축승가는 유명하다. 여기서는 노예무역의 찬가를 뜻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영구적 자연법칙’을 해방시키고 노동자를 그 모든 노동조건에서 분리시키는 과정을 완성시키며, 또한 한쪽 극에서는 사회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자본으로 전화시키는 한편 다른 한쪽 극에서는 민중을 근대사의 훌륭한 작품인 임노동자〔즉 자유로운 ‘노동빈민arbeitende Arme’〕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수고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지에Augier가 말하듯 화폐가 뺨에 자연의 핏자국을 묻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자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난다. (ㄱ판, 1018~19; M787~88)


*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인용한 것은 베르길리우스의 시구 “로마 건국에는 이런 수고가 필요했다”이다. 『아이네이스』 제1권 33행.


너무나 유명해서 덧붙일 말이 필요 없는 마지막 문장에는 “자연이 공허한 것을 두려워하듯이* 자본은 이윤이 없는 것〔또는 이윤이 너무 적은 것〕을 두려워한다”는 내용의 각주가 있다. “공허한 것”은 오역인 듯하며, ㅂ판과 일판은 “진공”이다.    


* 고대 물리학의 잠언.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제1책 5장, 『팡타그뤼엘』제4책 62장 참조. 이 원리는 갈릴레오나 토리첼리에 의해 펌프의 양수(揚水), 수은주에 이용되고 데카르트나 스피노자에 의해서도 언급된다. 




 

제7절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ㅂ판: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자본의 시초축적, 즉 자본의 역사적 발생은 결국 무엇으로 귀착되는가? 그것이 노에 및 농노를 직접적으로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것〔즉 단순한 형태변화〕이 아닌 이상, 그것은 오직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收奪)〔즉 자기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사적 소유의 해체〕를 의미할 따름이다. (ㅂ판, 1047; M789)


7절에서는 개인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로 나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를 다룬다. 사적 소유는 크게 보면 개인이 노동자냐 비노동자냐에 따라 구분되고, 그 사이에 다양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은 소경영의 기초이며,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1 (…) 그것이 번창하면서 모든 활력을 다 발휘하고 전형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이 다루는 노동조건의 자유로운 소유주일 때〔즉 농민은 자신이 경작할 땅의, 수공업자는 그가 숙련된 손으로 다룰 용구의 자유로운 소유주일 때〕뿐이다.*2 

이 생산양식*3은 토지와 그 밖의 다른 생산수단의 분산을 그 전제로 한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집적은 물론 동일한 생산과정 내에서의 분업과 협업을 배제하며, 또한 자연에 대한 사회적 지배와 규제 그리고 사회적 생산력의 자유로운 발전까지도 모두 배제한다.*4 (…) 이 생산양식을 영속화하려는 것은 - 페쾨르Pecqueur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 마치 “보편적 범용(凡庸)을 명령하는”*5 것과 같다. (ㄱ판, 1020; M789)


*1 프랑스어판에는 이 한 문장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노동자가 그 생산적 활동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농업 또는 공업에서 소경영의 필연적 귀결이지만, 이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의 못자리(苗床)이고 노동자의 손의 숙련, 기술(才)이나 자유로운 개성이 단련되는 학교이다.”

*2 프랑스어판에는 이 다음에 다음 문구를 넣었다. “이것은 마침 기악의 명수가 그 악기의 자유로운 소유자인 것과 같다.”

*3 프랑스어판에는 이 문단에 나오는 여러 곳의 ‘생산양식’이 모두 ‘경영제도’로 되어 있다.

*4 프랑스어판에는 이곳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규모의 협업, 공장이나 농장에서의 분업, 기계의 사용,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적 지배, 노동의 사회적 힘의 자유로운 발전, 집단적 활동의 목적이나 수단 또는 노력에서의 협력과 통일도 배제한다.”   

*5 콘스탕탱 페쾨르(프랑스 경제학자,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사회정치경제학의 신이론...』, 파리, 1842, 435쪽 참조. 〔일판은 “만인이 범용할 것을 명령하는”, ㅂ판은 “만인의 범인화(凡人化)를 명령”이다.〕


이러한 생산양식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 태내에서 그것을 파괴할 새로운 수단이 창출된다. 분산된 생산수단은 사회적으로 집적되고, 다수의 소규모 소유는 소수의 대규모 소유로 바뀐다. “무섭고 고통스러운 민중수탈”이 “자본의 전사(前史)”를 이루며, 이제까지 살펴본 각종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이 전화과정이 낡은 사회를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분해하고 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로,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자본으로 전화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드디어 자신의 발로 서게 되면, 바로 그때부터 노동의 사회화, 토지와 기타 생산수단의 사회적〔즉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생산수단으로의 전화, 따라서 사적 소유자에 대한 수탈 등은 더욱더 심화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이제부터 수탈되는 것은 자영 노동자가 아니라 많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자본가들 자신이 된다. (ㄱ판, 1021; M790)


이 전화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이익을 가로채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가 끊임없이 감소해감에 따라 빈곤 ․ 억압 ․ 예속 ․ 타락 그리고 착취의 정도는 오히려 증대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팽창하는,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과적 자체의 메커니즘을 통해 훈련되고 결합되며 조직되는 노동자계급의 저항도 증대해간다. 그런데 자본독점Kapitalmonopol은 자신과 함께〔또 자신 아래에서〕 개화한 이 생산양식의 질곡으로 작용하게 된다. (…)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이제는 수탈자가 수탈당하게 된다. (ㄱ판, 1022; M790~91)


자본주의적 생산은 “분산적인 사적 소유”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로 “지루하고 가혹하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회적 소유”로 전화한다. 







  1. 아몬드문어 2014.06.27 02:10

    GD님 안녕하세요! 여쭈어 볼 것이 있어 들렀습니다. 자본론 2권 8장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2절에서요, 길판으로는 216쪽, MEW 174쪽에 맨마지막이 (R.C., 제17823번)으로 끝나는 문단이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 "... - 사실 이 점은 기계에 대한 노동자의 법률적 권리를 이루는 것이어서 노동자는 부르주아 법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계의 공동 소유자인 셈이다."가 문제의 문장입니다. 여기서 "부르주아 법률"을 자본론 일어판들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는지 궁금합니다. MEW원문은 "Der Arbeiter zahlt in eigner Person, und dies bildet eins der Selbsterhaltungsmysterien des Kapitals, die der Tat nach einen juristischen Anspruch des Arbeiters auf die Maschinerie bilden und ihn selbst vom bürgerlichen Rechtsstandpunkt aus zu ihrem Miteigentümer machen." 입니다. "Recht"를 펭귄판에서는 "right"로 MECW에서는 "law"로 번역했습니다. 비봉판도 그냥 법이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Recht가 법과 권리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말이긴 한데, 제 추측상으로는 "부르주아적 권리"가 좀 더 타당한 것 같습니다. 귀찮으시겠지만 한 수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gdproofreader.tistory.com BlogIcon ienai 2014.06.27 17:42 신고

      안녕하세요. 여전히 열공하시는 모습 부럽고, 1권도 다 못 끝낸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을 일어판에서 찾아봤습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으로 지불하기 때문이고, 이 점은 자본의 자기 유지의 비법--이 비법은 사실상 기계설비에 대한 노동자의 법적 청구권을 구성하는 것이고, 부르주아적 권리의 관점에서조차도 노동자를 기계설비의 공동소유자로 한다--의 하나를 이룬다."

      일어판은 탐정님이 생각하시는 바대로 '부르주아적 권리'라고 옮겼군요. 저도 아직 제대로 읽지 않은 부분이라서 단언하긴 어렵지만 문맥만 봐서는 '법률'보다는 '권리'가 더 적절해 보입니다.

  2. 아몬드문어 2014.06.28 01:06

    감사합니다! GD님이 정리해주신 글들을 보면서 복습 이상으로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부르주아적 권리'에 관한 펭귄판의 각주는 이런 내용입니다.

    "' Biirgerliches Recht ', but ' right ' evidently in the philosophical sense of jurisprudence rather than that of positive law. Cf. '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in The First International and After, Pelican Marx Library, pp. 346-7(253)."

    여기에 나온 <고타강령 초안 비판>에 나온 '부르주아적 권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보았는데요,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장문의 발췌를 올려봅니다.

    - 펭귄판에서 언급한 <고타강령 초안 비판>에서의 "부르주아적 권리"
    (' '로 고딕체 강조를 대신했음)

    "우리가 여기서 관계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거꾸로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이며, 그러므로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으로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이에 걸맞게 개별 생산자는 자신이 사회에 주는 것을 - 공제 후에 - 정확히 돌려받는다. 그가 사회에 주었던 것은 자신의 개인적 노동량이다. 예를 들면, 사회적 노동일은 개인적 노동 시간 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개별 생산자들의 개인적 노동 시간은 사회적 노동일 가운데 자신이 제공한 부분, 즉 사회적 노동일에 대한 자신의 몫이다. 그는 자신이 (사회 기금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공제한 후에) 이러이러한 만큼의 노동을 제공하였다는 증서를 사회로부터 받고, 이 증서를 가지고 소비 수단의 사회적 저장품에서 동일한 양의 노동이 비용을 들인 만큼을 빼내 간다. 그는 어떤 형태로 사회에 준 것과 동일한 양의 노동을 다른 형태로 되받는다.
    상품 교환이 같은 가치물의 교환인 한, 여기서는 분명히 상품 교환을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가 지배한다. 내용과 형식은 변하는데, 그 이유는 변한 사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동 이외에는 어떤 것도 줄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소비 수단 이외에는 어떤 것도 개별적인 소유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 생산자들 사이의 소비수단의 분배에 관해 말하자면, 상품 등가물의 교환에서와 동일한 원리가 지배하여, 어떤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은 다른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과 교환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 원리상 - '부르주아적 권리'이며, 상품 교환에서는 등가물의 교환이 '평균적'으로만 존재하고 개별적인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 반면에 원리와 실제가 이제는 서로 머리채를 쥐고 싸우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와 같은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 '평등한 권리'에는 아직도 부르주아적 제한이 들러붙어 있다. 생산자의 권리는 그의 노동 제공에 비례한다; 평등의 요체는, '평등한 척도'인 노동으로 측정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하거나 더 많은 시간 동안 노동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이 척도 노릇을 하려면 연장이나 강도로 볼 때 일정한 것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척도이기를 중지한다. 이러한 '평등한' 권리는 불평등한 노동에 대해서는 불평등한 권리이다. 이것은 어떠한 계급 차이도 승인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각각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암묵적으로 개인의 불평등한 소질을 승인하며, 따라서 노동자의 실행 능력을 자연적 특권으로 승인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모든 권리가 다 그렇듯이 내용상 불평등의 권리이다.' 그 권리의 요체는 본성상, 오직 동일한 척도의 적용에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평등한 개인들(만일 그들이 불평등하지 않다면 그들은 서로 다른 개인이 아닐 것이다)이 동일한 척도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이 동일한 관점 아래 놓이는 한에서, 즉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만 파악되는 한에서이며, 예컨데 이 경우에 그들은 '노동자로서만' 간주되고 그들에게서 그 이상의 것은 보지 않으며 다른 모든 것들은 도외시된다. 나아가 : 어떤 노동자는 결혼하였는데, 다른 노동자는 결혼하지 않았다; 어떤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보다 자식이 많다, 등등. 그러므로 동일한 노동을 실행하고 따라서 사회적 소비 기금에 대해 동일한 몫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실제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으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부유하게 된다, 등등. 이러한 모든 폐단을 피하기 위해서는, 권리는 평등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해야 한다(저작선집 4권, 박종철출판사 : 375-377)."

    GD님은 예전이 읽어보셨겠지만, 저에게는 이전에 알고있던 것을 다시 고쳐주는 부분이라서 장문테러(?)를 각오하고 옮겨 보았습니다. 차라리 책 본문을 읽는 게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동하실 때 심심하시면 읽어주세요!

    • Favicon of https://gdproofreader.tistory.com BlogIcon ienai 2014.06.29 05:22 신고

      아니, 여기서 이러시면 오예입니다. :)
      장문의 답글 테러를 하시면 저야 정말로 감사하지요.
      선 리플 후 감상, 찬찬히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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