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제1절 가치척도 

(ㅂ판: 가치의 척도)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항상 금을 화폐상품이라고 전제”(ㄱ판, 160)한다.


금의 첫째 기능은 상품세계에 그 가치표현의 재료를 제공하는 것[또는 여러 상품가치를 같은 이름의 크기, 즉 질적으로 같고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크기로 표현하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금은 가치의 일반적인 척도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그리고 오로지 이 기능을 통해서만 특수한 등가상품인 금은 화폐가 된다. (ㄱ판, 160; M109)


제2장의 후반에 나온 부분을 다시 보자. 흔히 사람들은 특정 상품(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들이 그것으로 자기 가치를 표시한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은 반대로 다른 상품들이 자기 가치를 어떤 한 상품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화폐가 되는 것이다(ㄱ판, 159). 그렇게 화폐(금)는 다른 상품들의 가치척도 기능을 한다. 상품들이 화폐에 의해 같은 단위로 비교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품들이 “대상화된 인간노동”이라서 “양적으로 비교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공통된 가치척도로서 화폐가 있게 되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금과 상품 사이의 척도이고 금은 모든 상품들이 그것으로 측정되는 한에서만 가치척도가 되기 때문에 화폐가 상품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게 만드는 듯이 보이는 것은 유통과정의 단순한 허상이다. 오히려 금을 화폐로 만드는 것은 바로 대상화된 노동시간으로서의 상품들의 동일기준에 의한 가측성이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김호균 옮김, 중원문화. 57쪽)


각주 50(ㅂ판 각주 1)에서 짚고 넘어갈 몇 가지. 

1) ㄱ판의 “왜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사회적 노동으로 곧장 취급될 수 없는가” “오언은 사회화한 노동을 곧바로 전제”에서 ‘곧장’ ‘곧바로’는 적절치 않다. 이들은 각각 ‘그 대립물인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 취급될 수 없는가’ ‘오언은 직접적으로 사회화한 노동을 전제’라 고쳐야 한다.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은 바로 나오듯이 “상품생산과 정반대의 생산형태”, 즉 자본주의 이후의, 또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생산형태이다.  


2) 마르크스가 "상품생산 아래에서 ‘노동화폐’라는 천박한 유토피아주의“에 대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논한 바 있다고 했으니 그 부분을 살펴보자. 


화폐의 직접적인 도량단위로서 노동시간에 관한 학설은 존 그레이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발전되었다. (74) 


1노동시간 등이 적힌 은행권들은 은행창고에 저장된 다른 모든 상품들의 등가물에 대한 위탁증권으로 기능한다. (75) 


노동시간이 가치의 내재적 척도인데 왜 노동 말고 다른 외적인 척도가 있는가? 왜 교환가치가 가격으로 발전되는가? 왜 모든 상품은 교환가치의 적절한 현존으로, 즉 화폐로 전환된 하나의 배타적 상품으로 그들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 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그는 상품들이 직접 서로 사회적 노동의 생산물로서 관계될 수 있다는 상상을 품고 있었다. (…) 그레이가 상품들에 포함된 노동시간을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그 노동을 공동체적 노동시간 또는 직접적으로 연합된 개인들의 노동시간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실상 금과 은 같은 고유한 상품이 다른 상품들에게 일반적 노동의 체현으로 마주 설 수 없을 것이고, 교환가치는 가격이 되지 않을 것이고, 사용가치는 교환가치가 되지 않을 것이며, 생산물은 상품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부르주아적 생산의 기초 자체가 지양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그레이의 생각은 아니다. 생산물들이 상품들로서 생산되는데 상품들로서 교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레이는 국립은행에 이 경건한 소망의 집행을 위임한다. 한편으로 사회는 은행의 형태로 개인들을 사적 교환의 제 조건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교환의 기초 위에서 계속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76)


각 상품은 직접 화폐이다. 이것이 그레이가 그의 불완전하고 따라서 잘못된 상품분석에서 도출한 이론이다. '노동화폐'와 '국립은행'의 '유기적' 구성과 '상품창고'는 독단을 세계지배적 법칙이라고 속이는 환상일 뿐이다. 상품이 직접 화폐라거나 또는 상품에 포함된 사적 개인의 특수노동이 직접 사회적 노동이라는 독단은 은행 하나가 그것을 믿고 그에 따라서 작업한다고 해서 진실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 화폐로부터, 화폐로서는 교환가치로부터, 교환가치로서는 상품으로부터, 상품으로서는 부르주아적 생산형태로부터 벗어나려는 경건한 소망에 대한 경제학적으로 들리는 용어가 노동화폐라는 것은 일부는 그레이 이전에, 일부는 이후에 저술했던 몇몇 영국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기탄없이 고백된다. 그러나 화폐의 퇴화와 상품의 승천을 사회주의의 핵심으로 설교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주의를 상품과 화폐 사이의 필연적 연관에 관한 초보적 오해로 분해한 것은 프루동 씨와 그 학파에 와서 이루어졌다." (77)

- 괄호 안 쪽수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강조는 원문 그대로.


상품생산 사회에서 상품들에 포함된 노동시간을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것, 직접적으로 연합된 개인들의 노동시간과 같다고 가정하는 존 그레이의 생각은 오류라는 것이다. 지금 생산물들이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있는데, 상품으로서 교환할 수는 없다는 것은 모순이다. 역시나 프루동 비판도 빼놓지 않는데, 프루동은 상품과 화폐의 필연적 연관을 무시하고 그것을 분리하기만 하면 사회주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전에 heesang님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통해 오언의 노동화폐 이야기를 설명해주신 바 있다. "오언의 경우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노동화폐를 사용하자는 주장을 했고, 프루동은 상품생산을 전제하면서, 그러니까 자본주의를 전제하면서 상품화폐를 노동화폐로 대체하자고 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 프루동은 "교황이 없는 가톨릭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고 오언은 "교황이 없는 개신교를 만들려고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존 그레이에 대한 이야기는 heesang님의 글 “(19) 가톨릭 신자 모두가 교황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에서도 볼 수 있다.  


3) 각주 중 "오언의 '노동화폐'가 '화폐'가 아닌 것은 극장의 입장권이 화폐가 아닌 것과 같다"는 부분에 日註가 있다. 

* 노동이야말로 가치의 자연적 표준이라 한 오언은, 그의 이상적 공동체(理想集落) '뉴 하모니'에서, 1826년에, 예를 들어 '10시간'이라고 인쇄된 '노동화폐'를 사용했다." 


4) 각주 마지막에 오언이 “상품생산을 전제하면서 동시에 상품생산의 필연적 조건들을 [화폐에 관한 속임수에 의해] 제거해보려는 엉뚱한 생각〚프루동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ㅂ판, 121)는 부분은 '그래도 오언이 프루동보다는 낫다'고 칭찬하는 느낌으로 읽힌다. ㄱ판 번역은 좀 다르다. "오언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상품생산을 전제로 하면서도 화폐를 적당히 조작하여 거기에 필수적인 조건을 회피할 수 있는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오언이 화폐를 어떻게 해보려는 술수를 생각해내지 못한, 좀 모자란 사람처럼 읽힌다. 일판에서는 “오언이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정도로 보이는데, 일단 모든 것을 모아서 잠정 결론을 내리면 '오언은 프루동처럼 잔꾀를 부리지는 않았다/못했다'라고 하겠다. 


다음 부분을 살펴보면 ㄱ판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


어떤 상품의 가치를 금으로 표현하는 것, 즉 ‘x량의 상품 A = y량의 화폐상품 B’는 그 상품의 화폐형태 또는 가격이다. (…) 상품의 상대적 가치의 일반적인 형태는 이제 다시 최초의 단순한 [또는 개별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의 모습을 취한다. 반면 전개된 상대적 가치표현[또는 무한히 이어지는 상대적 가치표현은 화폐상품의 특수한 상대적 가치형태가 된다. (…) 화폐는 가격을 갖지 않는다. 다른 모든 상품의 상대적 가치형태의 통일적 기준이 되기 위하여 화폐는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 자신의 등가로서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ㄱ판, 161; M110)


화폐는 가격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상품들의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화폐는 자기 자신의 등가(물)로서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어반복이기 때문에 화폐는 가격을 가지지 않는다.] (ㅂ판, 121~22)


화폐는 아무 가격도 갖지 않는다. 다른 모든 상품의 이러한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에 참가하기 위해서, 화폐는 그 자신의 등가물로서 그 자신에 관련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판)

 

“상대적 가치의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로 써야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단순한 또는 개별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와 대비가 된다. 그게 그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상대적 가치형태의 통일적 기준이 되기 위하여”가 아니라 “통일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이라고 써야 한다. (통일적 기준이 되긴 뭐가 돼...) 제1장 상품 제3절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화폐란 것은 상대적 가치형태에서 선출(또는 제외)되어 일반적 등가물이 된다. 상대적 가치형태에 참가하면서 그와 동시에 일반적 등가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아마포 20미터=아마포 20미터, 금 1온스=금 1온스처럼 동어반복이 되기 때문에, 화폐는 가격을 갖지 않는다. 해당 부분을 앞에서 다시 찾아보자. 


거꾸로 일반적 등가물로 등장하는 상품은 상품세계의 통일적이고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에서 배제되어 있다. 아마포, 즉 일반적인 등가형태를 취하고 있는 어떤 한 상품이 동시에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에도 참여한다면, 그 상품은 스스로 자신의 등가물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20엘레의 아마포=20엘레의 아마포라는, 가치도 가치크기도 표현되지 않은 하나의 동어반복만이 얻어질 것이다. (ㄱ판, 130; M83)


바로 이어지는 오역. 


철, 아마포, 밀 같은 것들의 가치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 물품 자체 속에 존재한다. 이 가치는 이들 물품이 금과 등치됨으로써 - 이런 등치관계는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 (ㄱ판, 162; M110)


쇠, 아마포, 밀 등의 가치는, 비록 보이지는 않더라도, 이 물건들 속에 존재한다. 이 가치는 이 물건들과 금과의 동등성에 의해, 말하자면 이 물건들의 머리 속에만 있을 뿐인 금과의 관계에 의해 표현된다. (ㅂ판, 122)


Der Wert von Eisen, Leinwand, Weizen usw. existiert, obgleich unsichtbar, in diesen Dingen selbst; er wird vorgestellt durch ihre Gleichheit mit Gold, eine Beziehung zum Gold, die sozusagen nur in ihren Köpfen spukt.



일판은 ㅂ판과 거의 같다. 등치관계가 (물건들의) 머릿속에 있는 건 맞는데 '물품들의 가치'가 금과 등치됨으로써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면 적절치 않다. 원문에서 vorstellen은 ‘말해주다, 표상하다’인데 왜 ‘만들어진다’고 했는지.   


가치척도 기능을 하는 화폐는 관념적인 화폐다. 상품에 가격형태를 부여할 때 이는 머릿속에서 그려진 것일 뿐 아직 상품이 금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그저 머릿속에서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는 화폐가 가치척도의 기능을 맡고 있음에도 가격은 전적으로 실제의 화폐량(‘화폐재료’로 고쳐야 한다)에 의존한다.” 상품가치는 다양한 양의 금으로 표현되고, 금의 일정량을 도량단위로 삼아야 할 기술적 필요성이 생겨난다. 이것이 “도량기준”(ㅂ판: 도량표준)으로 발전한다. “모든 금속유통에서는 중량을 나타내는 도량기준의 기존 명칭이 그대로 화폐[또는 가격]의 도량기준의 최초의 이름을 이루게 된다”(ㄱ판, 164; M112).


화폐는 가치척도와 가격의 도량기준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기능을 맡고 있다. 화폐는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이라는 면에서는 가치척도이고, 또 고정된 금속중량이라는 면에서는 가격의 도량기준이다. 가치척도로서 화폐는 다양한 상품의 가치를 가격[곧 머릿속에 그려진 금의 분량]으로 전화시키지만 가격의 도량기준으로서는 그러한 금의 분량을 측정해준다. (ㄱ판, 164; M113) 


하나의 동일한 양의 금이 도량단위로 변함없이 사용되면 될수록 가격의 도량기준은 그만큼 그 기능을 더욱 잘 수행하게 된다. 금은 그 자체가 노동생산물이고 따라서 가치가 변할 수 있다는 오로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치척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ㄱ판, 165; M113)


금의 가치변동이 가격의 도량기준으로서의 그 기능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 또 금의 가치변동은 가치척도로서의 금의 기능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ㄱ판, 165; M113)

 

금속의 중량에서 비롯된 여러 화폐명칭은 갖가지 이유 때문에 점차 본래의 중량명칭에서 분리되어가는데 (…)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모든 나라에서는 금속중량의 화폐명칭이 관습적으로 보통의 중량명칭에서 분리되었다. 화폐의 도량기준은 한편으로는 순전히 관습적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적 타당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국은 법률의 규제를 받는다. (ㄱ판, 166~67; M114~15)


아래는 각 판본마다 번역이 조금씩 다른 부분인데, 특히 “무개념적”(일판: 沒槪念的)인 형태로 발전한다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아 고민하다가 이런저런 도움으로 해결. 


파운드, 탈러, 프랑, 두카트 등등의 화폐 명칭에는 가치관계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신비한 명칭에 어떤 숨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야기되는 혼란은, 이 화폐 명칭이 상품가치를 표현함과 동시에 일정한 금속무게[즉 화폐의 도량표준으로 역할하는 금속무게]까지도 표현하게 됨으로써 더욱 심하게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치가 상품세계의 잡다한 물체들로부터 구별되어 이러한 형태[즉 물적일 뿐 아니라 순수히 사회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ㅂ판, 129; M115~16)


this material and unmeaning, but, at the same time, purely social form (MIA)

this form, a material and nonmental one, but also a simple social form (BF, 195)


가치가 상품세계의 다양한 외관에서 분리되어 이러한 무개념적이고 물적인, 그러나 동시에 순수한 사회적인 형태로 계속 발전해나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ㄱ판, 168; M116) 


Andrerseits ist es notwendig, daß der Wert im Unterschied von den bunten Körpern der Warenwelt sich zu dieser begriffslos sachlichen, aber auch einfach gesellschaftlichen Form fortentwickle.


이에 대해서는 heesang님의 글 “(40) 지금 그 관계의 흔적은 잊었지만”과 EM님의 글 “[3장 화폐] ‘무개념적’이라는 말에 대하여”를 참조하면 된다. 무엇보다 이에 관련이 있는 마르크스의 언급부터 보자. 


화폐에서는 상품들 사이의 모든 차이점들이 사라진다. (…) 그것의 기원에 대한 단서도 지워져 있고, 여러 자본 성분들이 생산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특수한 차이들에 대한 흔적도 모두 사라져버려서 (…) 개념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 실현된 자본이 그 과정의 최종단계에서 화폐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본관계의 무개념적(begriffslos) 표현이다. ( 『자본 II』, 길, 65쪽)


heesang님의 글에서처럼 “그 개념을 파악할 수 없다 혹은 기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로 파악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순수한 대신 단순한(einfach, simple)이라는 번역어가 맞을 것”이라는 의견도 기억해두자.  


이렇듯 금이 원래 중량과는 상관없이 화폐명칭만을 갖게 되면서 화폐에 대한 혼란도 심해진다. 금이라는 것이 상품가치와 금속무게를 동시에 표현하다 보니 화폐에 대해 오해하고 착각한다. “금은 그 자체의 재료료 평가되고, 다른 모든 상품과는 달리 어떤 고정된 가격을 국가로부터 받는다는 괴상한 관념”이 생기거나 “금의 일정한 중량을 계산명칭으로 고정하는 것을 이 중량의 가치를 설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법정 화폐명칭을 국가가 더 큰, 또는 더 작은 무게에 붙임으로써 화폐의 ‘주조가격’을 인상하거나 인하하려는 환상적인 생각”(ㅂ판, 129)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포고령으로 국가의 부를 뻥튀기할 수 있다면 왜 진작에 국가가 그 짓을 안 했겠느냐고, 우리의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페티가 이미 비판한 바 있다는 것이 각주 62(ㅂ판은 각주 13)의 내용. 


ㄱ판 168쪽 각주 62) 끝부분의 “(카를 마르크스, 앞의 책, 36쪽)”은 “(페티, <화폐론>, 36쪽)”으로 고쳐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 앞의 책"이라고 하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를 가리키지만, 이 부분의 인용은 페티의 책 『화폐론』에서 한 것이다.


가격은 상품 속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의 화폐명칭이다. (…)  상품의 가치크기를 지수로 표시해주는 가격이 그 상품과 화폐 사이의 교환비율을 나타내는 지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그 상품과 화폐 사이의 교환비율을 나타내는 지수가 반드시 그 상품의 가치크기를 나타내는 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생산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또는 노동생산력이 변하지 않는다면], 1쿼터의 밀을 재생산하는 데는 변함없이 동일한 양의 사회적 노동시간이 지출되어야만 한다. (…) 가격형태 그 자체 속에는 가격과 가치가 양적으로 불일치하거나 가치크기로부터 가격이 괴리될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 (ㄱ판, 169~70; M116~17) 


가격(현상)과 가치(본질)이 양적으로 괴리한다는 얘기다. 질적인 괴리도 있다. 가격은 가치량을 화폐로 표현한 것인데, 이 가격이 가치를 전혀 표현하지 않을 수 있다. 양심, 명예의 경우처럼 상품이 아닌 것을 가격을 붙여 판매한다고 하면, 이는 가치를 갖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갖는 것이다. 


마지막에 단테의 『신곡』을 인용한 부분을 보자.

 

실질적인 교환가치가 되기 위해서 상품은 자신의 타고난 육신을 벗어던지고(*1) 자신을 단지 가상의 금으로부터 현실의 금으로 전화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상품에게 이런 실체적 전화(Transsubstantiation)(*2)는 헤겔의 '개념'이 필연에서 자유로 이행하는 것(*3)[또는 새우가 껍질을 벗는 것이나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아담의 원죄에서 벗어나는 것(*4)]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 상품이 그 소유자를 위해서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수행해주려면 상품은 금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가령 철 소유자가 어떤 향락상품(*5)의 소유자에게 철의 가격을 가리켜 이것이 화폐형태라고 말한다면 향락상품 소유자는 [마치 천국에서 성 베드로가 자기를 향하여 신앙고백을 낭독하는 단테에게 대답하듯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화폐의 성분과 분량은 충분히 음미했으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대는 이 화폐를 그대의 지갑 속에 지니고 있는가(*6) (ㄱ판, 170; M117~18)


*1) 영(靈)의 몸(육신)과 구별된 그것.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5: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2) 기독교 교의에 따르면 성찬(聖餐)에 임하여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 일판에는 "化體"라는 표현을 썼다.

*3) 『엔치클로페디』, 「소논리학」 제159절 참조.

*4) 신약성서, 로마서 5: 12~19, 고린도전서, 15: 21~22, 44~49, 골로새서 2: 11 등. 낡은 인간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2~19)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 21~22)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 44~49)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로새서 2: 11)


*5) 신약성서, 베드로 제2, 1: 4, 요한 1, 2: 17 등.

“향락상품”을 각 판본에서 보면...

  일판: この世の欲を満たすある商品 (현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

  BF: some other earthly commodity

  MIA: some other commodity  

  MEW: weltlustigen ware   


*6) 단테, 『신곡』, 천국편, 제24歌.


*2)의 “실체적 전화”와 “향락상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heesang님이 이런 조언을 주셨다. "가톨릭의 용어를 따라 정확히 성변화(聖變化: 『가톨릭』성체 성사(聖體聖事)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일)라고 번역하고 역주를 다는 게 좋았을 듯하다. 5)에는 분명히 '현세'의 의미를 담은 단어가 추가되어야 단테하고도 잘 어울릴 것 같다."


"타고난 육신을 벗어던지고"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는 것은 이 부분을 읽을 당시엔 물론 전혀 몰랐고, 다음의 제2절 유통수단으로 넘어가면서 손톱만큼 깨닫기 시작했다. 제2절 유통수단은 "상품의 형태변화/변태(metamorphosis)" 이야기로 시작하니까. 제1절 마지막에 형태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제2절에서 다루는 유통의 필요성을 암시한 셈이다. 



_2013. 5. 26에 다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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