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유통수단 

a. 상품의 형태변화

[ㅂ판: 상품의 변태(變態)]



교환과정은 상품을, 그것이 사용가치가 아닌 사람의 손에서 사용가치인 사람의 손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신진대사이다. 한 유용노동의 산물이 다른 유용노동의 산물과 대체되는 것이다. (…) 우리는 이제부터 모든 과정을 형태의 측면에서, 즉 사회적 신진대사를 매개하는 상품들의 형태변화(Formwechsel)[또는 Metamorphose]만을 고찰하고자 한다. (ㄱ판, 172; M119)


이미 제2장 교환과정에서 개인적일 수만도 없고 사회적일 수만도 없는 상품교환의 특성과 함께, 사용가치이면서 가치라는 상품의 이중성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상품(보통의 상품과 화폐상품)들의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상품의 형태변화를 살펴본다. “가치의 담지자”로서 상품은 어떻게 가치의 모습을 드러내고 형태를 바꾸는가. 유충(가치)이 번데기(아마포), 또는 황금번데기(화폐)를 거쳐 나비(자본)가 되는 변태 과정 중에서 ‘황금번데기’를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벌써 몇 번째 보는데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다. 그저 꼼꼼히,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 먹듯이 반복해서 보는 수밖에. 


처음에 상품은 금이나 다른 어떤 상품과도 섞이지 않은 채, 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교환과정에 들어온다. 그런 다음 교환과정은 상품을 상품과 화폐로 이중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상품 내부의 대립인 사용가치와 가치 간의 대립을 외적인 대립형태로 만들어낸다. 이 대립에서 상품은 사용가치로, 화폐는 교환가치로 마주 선다. 다른 한편 이 대립의 양쪽은 모두 상품[즉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체]이다. 그러나 이들 구별(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구별-옮긴이)의 통일은 대립의 양쪽 모두에서 역의 형태로 표현되고, 그럼으로써 이들 양쪽 간의 상호관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대립의 한쪽에 자리한 상품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사용가치이며 그것의 가치는 가격을 통해 단지 관념적으로만 표현된다. (i) 그리고 이 가격은 상품의 가치를 마주 서 있는 금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ii) 반대로 대립의 다른 쪽에 서 있는 금은 그 물적 성질에서 가치재료[즉 화폐]로 간주된다. 따라서 금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교환가치이다. 금의 사용가치는 갖가지 상대적 가치표현을 통해서 단지 관념적인 모습만을 띠게 되는데, 이때 금과 대립하는(즉 금을 통해서 가치를 상대적으로 표현하는-옮긴이) 모든 상품은 반대로 사용가치의 모습을 띠게 된다. 상품의 이런 온갖 대립적인 형태가 상품의 교환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운동형태들이다. (ㄱ판, 172~73; M119)


상품은 우선은 도금도 하지 않고 사탕도 넣지 않고 타고난 모습 그대로 교환과정에 들어간다. 그러나 교환과정은 상품을 상품과 화폐라는 두 개의 요소로 분화시키는데, 이 두 개의 요소는 상품에 내재하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을 표현하는 외적 대립이다. 이 대립에서 사용가치로서의 상품들이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와 대립한다. 다른 한편, 이 대립의 어느 쪽도 상품이며, 따라서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차이[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은 두 극의 각각에서 서로 반대로 표현되며, 또 이것에 의해 두 극의 상호관계가 표현된다. 등식의 한편에는 보통의 상품이 있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사용가치이다. 그것의 가치로서의 존재는 가격에서 다만 관념적으로 나타날 뿐이며, (i) 이 가격을 통해 상품은 [상품가치의 진정한 화신인] 금과 관련을 맺고 있다. (ii) 그와는 반대로, [등식의 다른 한편에 있는] 금이라는 물건은 오직 가치의 화신, 화폐로서만 나타난다. 따라서 금은 현실적으로 교환가치이다. 금의 사용가치는 일련의 상대적 가치표현들[여기서 금은 다른 모든 상품들을 자신의 유용성의 물질적 표현의 총체로 대면한다]에서 다만 관념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상품들의 이와 같은 대립적 형태들은 교환과정의 현실적인 운동형태들이다. (ㅂ판, 134) 


위의 인용 부분에서 ㄱ판은 몇 군데 번역이 이상하다. 먼저, “교환과정은 상품을 상품과 화폐로 이중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상품 내부의 대립인 사용가치와 가치 간의 대립을 외적인 대립형태로 만들어낸다”는 문장은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교환과정이 상품을 일반상품과 화폐상품으로 분화시키는 것은 맞지만, ‘그럼으로써’ 내적 대립(사용가치 vs 가치)을 외적 대립(상품 vs 화폐)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옮겨놓으면 내적 대립과 외적 대립이 인과관계나 선후관계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교환과정 때문에 내적 대립이 외적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교환과정은, 상품과 화폐로의 상품의 이중화를, 즉 상품들이 그것들에 내재하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을 거기에 나타내는 외적 대립을 가져온다. (일판)


상품이 상품과 화폐로 이중화되는 것, 이것이 곧 상품에 내재하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을 표현하는 외적 대립이며, 교환과정은 그러한 외적 대립을 만든다는 뜻이다.  


    (일반)상품      vs       화폐(상품)           ------ 외적 대립

 사용가치 vs 가치        사용가치 vs 가치      ------ 내적 대립


(i) 이 가격에 의해 상품은 그 실재적(현실적) 가치자태(價値姿態)로서의, 대립하는 금과 관련지어진다. (ii) 반대편에서 금재료는 가치가 물질화한 것으로서만, 화폐로서만 의의를 지닌다. (일판) 


일판에서는 (i)과 (ii) 문장이 위와 같다. “현실적인 가치자태”는 ‘가치의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보면 되겠다. ㄱ판은 이것을 “눈에 보이는 모습”이라고 풀어 옮겼는데 별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일판의 ‘가치자태’는 독일어 Wertgestalt를 옮긴 것이다. 제1장에 나오는 단순한/전개된/일반적 가치형태에서 가치형태는 Wertform이다. 의미상 차이가 있으니 이렇게 구별해서 옮기는 게 좋다. 일판은 Wertgestalt를 일관되게 “가치자태”라고 하는데, ㄱ판은 “가치의 모습” “가치형태” 등 일관성 없이 옮기고 있어서 혼란스럽다. ㅂ판은 “가치모습”인데 그나마 이게 의미 구별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i)에서 ㅂ판의 “상품가치의 진정한 화신인 금”이라는 표현은 역시 적절하지 않으며 ‘가치의 현실적 모습’이 제일 이해하기 쉽다. 


(ii)는 보통 금이 갖는 장식물 등등의 사용가치는 사라지고 금이 오로지 화폐로서만 남는다는 뜻이다. 독어를 모르니 오역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일판과 ㄱ판은 많이 다르고, ㄱ판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상품 맞은편에 있는 금이란 물건에서 사용가치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가치가 물질로 굳어진 것, 화폐가 되었다는 얘기인데, “금은 그 물적 성질에서 가치재료(화폐)로 간주된다”(Umgekehrt gilt das Goldmaterial nur als Wertmateriatur, Geld)고 하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차라리 ‘금이라는 물질이 가치재료(화폐)로 간주된다’고 하든가. 


한 문단 가지고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은 양극에서 서로 반대로 표현된다. 일반상품은 현실적으로 사용가치이고 그 상품의 (가격에서 나타나는) 가치는 관념적이다. 반대쪽에 있는 화폐상품(=금)은 현실적으로 교환가치이고 그것의 사용가치는 (상대적 가치표현들에서) 관념적으로만 표현된다. 그런 식으로 서로 반대가 된다. 상품의 사용가치와 가치의 내적 대립, 일반상품과 화폐상품의 외적 대립에 대해서는 heesang님의 글 "(50) 내적대립에서 외적대립으로"를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품의 교환과정은 다음과 같은 형태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상품 - 화폐 - 상품

W - G - W 


그 물적 내용으로 본다면 이 운동은 W - W, 곧 상품과 상품의 교환이며 사회적 노동의 물질대사이다. 결과물이 얻어지고 나면 과정 그 자체는 소멸해버린다. (ㄱ판, 174; M120)


ㅂ판에서는 C - M - C다. 이렇게 생산물의 교환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유통과정은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의 경우와는 달리 사용가치의 위치나 소유자가 변경되어도 소멸해버리지 않는다”(ㄱ판, 182; M126)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W - G: 상품의 제1형태변화[또는 판매]. 상품가치가 상품의 육신에서 금의 육신으로 건너뛰는 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목숨을 건 도약(Salto mortale)이다. (ㄱ판, 174; M120) 


우리는 논의상 필요에 의해 “현상을 순수한 형태로 고찰”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고 가정”(ㄱ판, 177; M122)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품이 판매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모험이라는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3권, 71쪽.


“다른 곳”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보자. 문장이 좀 안 좋은데 여하간 가치가 상품에서 화폐로 몸을 바꾸는 것은 “필사의 비약”이라는 점.  


그것은 그 보유자에게는 비사용가치이기 때문에만 상품이고, 또는 그의 노동은 타인을 위한 유용노동으로서만 실제노동이며 상품보유자에게는 추상적 일반적 노동으로서만 유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이 금을 끌어당기는 점을 상품세계에서 찾아내는 것이 철의, 또는 그 보유자의 임무이다. 그러나 이 난관, 상품의 필사의 비약은 여기에서 단순유통을 분석하면서 가정되듯이 판매가 이루어지면 극복된다. (김호균 옮김, 청사, 80)


아마포에 대한 사회적 욕망에는 다른 모든 사회적 욕망과 마찬가지로 그 한도가 있는데, 그것이 이미 경쟁상태의 다른 아마포 제조업자들에 의해 충족되고 있다면 우리가 얘기한 아마포 제조업자의 생산물은 과잉이 되어 쓸모없는 것이 된다. 물론 선물이라면 그것을 싫다고 할 사람이 없겠지만,* 그는 선물을 하기 위해서 시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ㄱ판, 175; M121)


* 받은 말(馬)의 이빨을 보지 말라고들 하지만(일판 원문): 이빨로 말의 나이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선물 받은 것의 품평을 하지 말라는 의미. 성 히에로니무스에서 유래된 독일 속담. 


알다시피 상품은 화폐를 사랑하지만 “참된 사랑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1 분업체계 속에서 자신의 신체부위가 어떻게 해체되어 있는지를*2 보여주는 사회적 생산조직의 양적 편성은 그 질적 편성과 마찬가지로 자연발생적이며 우연적이다.  (ㄱ판, 176~77; M122)


*1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제1막 제1장.


Ay me! For aught that I could ever read,

Could ever hear by tale or history,

The course of true love never did run smooth.

But either it was different in blood— (원문 참고)


*2  호라티우스의 {풍자시} 제1권 시 4 제62행.

(일판에서 "引き裂かれたる四肢"(조각조각 찢어진 사지)로 나온다. 이 표현은 ㄱ판 499쪽과 630쪽, ㅂ판 492쪽에 각각 "흩어져 있는 자신의 사지" "자기의 분산된 사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상품가격의 실현[즉 상품의 단순한 관념적인 가치형태의 실현]은 동시에 역으로 화폐의 단순한 관념적인 사용가치의 실현이며, 상품의 화폐로의 전환은 동시에 화폐의 상품으로의 전환이다. 이 하나의 과정은 이면적인 과정으로서, 상품소유자의 측에서는 판매이고 반대의 극인 화폐소유자의 측에서는 구매이다. 바꾸어 말해, 판매는 구매이며, C - M은 동시에 M - C이다. (ㅂ판, 139; M123)


금이 관념적인 화폐 또는 가치척도가 된 것은 모든 상품이 자신들의 가치를 금으로 측정하고 그리하여 금을 자신들의 사용가치 형태와 반대되는 머릿속의 형태[즉 가치형태]로 삼기 때문이다. 금이 실제로 화폐가 되는 것은 모든 상품들이 자신들을 양도함으로써 금을 자신들의 양도된[또는 전화된] 사용가치의 모습으로 삼고 따라서 자신들의 현실적인 가치형태로 삼기 때문이다. 그 가치형태를 통해서 상품은 자신의 본래적인 사용가치의 흔적과 그것을 만들어낸 특수한 유용노동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고 동질적인 인간노동을 똑같은 사회적 형태로 물상화시켜버린다. (ㄱ판, 178~79; M123)


강조한 “가치형태”가 아까 이야기한 Wertgestalt다. “지워버리고”보다는 ‘벗어버리고’가 더 낫다. 형태변화, 변태니까. ㅂ판에는 “상품은 그 본래의 사용가치(…)의 온갖 흔적을 벗어버리고 무차별적 인간노동의 한결같은 사회적 체현으로 전환된다”고 하였다. 일판을 보면 “금이 실재적인 화폐가 되는 것은 모든 상품들이 그것들의 전면적 양도에 의해 금을 상품들이 현실에서 탈피(脫皮)한, 또는 전화된 사용자태(使用姿態)로 하고 따라서 상품들의 현실적 가치자태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형태로 물상화”는 일판에서 “사회적 물질화로 용화(蛹化)”인데, 이 ‘용화’의 蛹이 바로 ‘번데기’다. 독어 원문에는 verpuppen(고치[번데기]로 변하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상품들이 모두 함께 힘을 모아 (황금)번데기라는 화폐를 상품세계의 왕으로 추대하는 셈이다. 


G - W: 상품의 제2[또는 최종적인] 형태변화[또는 구매]. 화폐는 다른 모든 상품의 전화된 모습[또는 그것들의 전반적인 양도의 산물]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 없이 양도 가능한 상품이다. 화폐는 모든 가격을 반대로 읽어주며, 또한 모든 상품을 통해 자신을 비춤으로써 상품의 몸을 자신이 상품이 되는 데 필요한 재료로 이용한다. (…) 상품은 그것이 화폐가 되는 순간 소멸하기 때문에, 화폐를 보아도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 소유자 손에 들어왔는지 또는 무엇이 그것으로 전화했는지 알 수 없다. 어디서 온 것이든 화폐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ㄱ판, 179~80; M124)


*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는 공중변소에 대한 과세를 아들이 비난하자 첫 번째의 세수(稅收)화폐를 가리키면서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는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대답에 “그래도 이것은 분뇨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스에토니우스 『베스파시아누스』 23에서)


상품의 형태변화에서 서로 역의 형태를 취하는 두 운동단계는 상품형태 - 상품형태의 탈피 - 상품형태로의 복귀라는 하나의 순환을 이루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상품 그 자체는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성격으로 규정된다. 상품소유자에게서 상품은 출발점에서는 사용가치가 아니지만 종점에서는 사용가치이다. 이리하여 화폐는 처음에는 [상품이 형태변화한 결과물인] 가치의 결정물(Wertkristall)로 나타나지만 나중에는 상품의 단순한 등가형태로 녹아버리게 된다. 

  한 상품의 순환을 이루는 두 번의 형태변화는 동시에 다른 두 상품의 역방향으로의 부분 형태변화를 이룬다. 이 상품[아마포]이 자신의 형태변화 과정을 시작하면 그와 함께 다른 한 상품[밀]의 전체 형태변화가 종결된다. 이 제1형태변화[즉 판매]에서 아마포는 몸소 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반면 아마포는 자신의 육신을 옮겨 담은 황금번데기를 통해서 제3의 상품의 제1형태변화를 종결시킨다. 이리하여 한 상품의 형태변화 과정이 그려내는 순환은 다른 상품들의 순환과 깊숙이 연루된다. 이 전체 과정은 상품유통(Warenzirkulation)으로 나타난다. (ㄱ판, 181~82; M126)


강조한 문장은 조금 이상하다. 일판과 원문에서 보면 이렇다.


이에 대해서 그 상품은 황금번데기 모습으로 모든 육신[상품체]의 길을 편력하지만, 이 황금번데기로서 그 상품은 동시에 어느 제3상품의 제1변태를 종결시킨다. (일판)


Als Goldchrysalide dagegen, worin sie selbst den Weg alles Fleisches wandert, endet sie zugleich die erste Metamorphose einer dritten Ware. (MEW, 126)


상품(아마포)이 황금번데기의 모습을 하고 모든 상품체의 길을 이동해 다닌다(wandert)는 것이다. ‘편력한다’는 표현은 상품체가 형태변화의 과정을 통과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는데 왜 살리지 못했는지 아쉽다. 황금번데기 모습을 하고 모든 육신이 가는 길을 간다는 표현도 멋지지 않은가... 


자본론은 책 곳곳에서 성서나 파우스트, 신곡 등 온갖 고전들의 인용과 비틀기를 엄청나게 보여주는데, 이 부분도 그중 하나다. ‘상품체가 편력하는 길’이라는 표현 역시 성서에서 끌어온 것이다(이재현, 「자본가의 머리로 던져진 솜방망이」, 『황해문화』 2010 겨울, 499~502 참조).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열왕기상 2:2)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여호수아 23:14) 


상품유통에서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직접적인 생산물교환의 개인적 및 지방적 한계를 타파하고 인간노동의 물질대사를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교환이 어떻게 완전히 당사자들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연결망을 발전시키는가를 보게 된다. 직포자가 아마포를 팔 수 있는 것은 농민이 이미 밀을 팔았기 때문이고, 애주가가 성경책을 팔 수 있는 것은 직포자가 이미 아마포를 팔았기 때문이며, 위스키 양조업자가 위스키를 팔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이미 영원한 생명의 물*[성경책]을 팔았기 때문이다. (ㅂ판, 144; M126)


* 신약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유통과정은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의 경우와는 달리 사용가치의 위치나 소유자가 변경되어도 소멸해버리지 않는다. 화폐는 한 상품의 형태변형 과정에서 탈락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늘 상품이 비워주는 유통의 빈 자리를 찾아가 자리를 잡는다. 예를 들어 아마포의 전체 형태변화, 즉 아마포 - 화폐 - 성경에서는 아마포가 제일 먼저 유통에서 탈락하고 화폐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그 다음에는 성경이 유통에서 탈락하고 화폐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그 다음에는 성경이 유통에서 탈락하고 화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상품에 의한 상품의 교체는 동시에 제3자의 손에 화폐상품을 쥐여준다. 유통은 끊임없이 화폐를 분주하게 만든다. (ㄱ판, 182~83; M126~27)


유통은 끊임없이 화폐라는 땀을 흘린다. (ㅂ판, 145)

Die Zirkulation schwitzt beständig Geld aus. (MEW, 127)

Circulation sweats money from every pore. (BF, 208)

流通はつねに貨幣を発汗するのである。



ㄱ판 174쪽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과 ‘유통과정’은 형태나 본질에서 차이가 있다. 언뜻 생각하면 생김새부터가 다르다. 전자는 먹이사슬처럼 보이고 후자는 뒤엉킨 먹이연쇄(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회적 연결망"이다. 화폐는 늘 유통에서 상품이 빠져나간 빈 자리를 차지한다. 그 빈 자리마다 찾아 들어가느라 쉴 겨를이 없다. 유통이 분주해서 화폐라는 땀을 흘린다고 볼 것인지, 화폐가 분주히 움직이느라 땀을 흘린다고 볼 것인지 의견이 갈릴 수 있겠다. ㄱ판과 일판은 번역이 비슷하고 독어판 원문과 BF, ㅂ판이 서로 비슷한 것 같은데 자신은 없다. 


이와 관련해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 동전 둘레에 톱니 모양의 금이 새겨지게 된 것은 옛날 사람들이 화폐를 위조하는 방법으로 '깎아내기'(clipping: 동전의 면이나 가장 자리를 깎아 금속 조각을 얻는 짓)와 '땀내기'(sweating: 가죽가방 속에 여러 개의 동전을 집어넣고 흔들어 떨어지는 가루를 모으는 짓)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왜 동전 둘레에 금이 생겨져 있을까" 참고). 화폐 위조 기법의 하나라는 sweating이라는 말을 보면 "유통이 화폐라는 땀을 흘린다"는 표현이 이것과 관련이 있을 법하다.  



이제부터는 물물교환과 상품유통의 차이, 그리고 공황의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다. 


유통은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의 시간적, 공간적, 개인적 한계를 타파하는데, 이런 타파의 과정은 바로 이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 내부에 존재하는 두 과정[즉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인도하고 다른 사람의 노동생산물을 인수하는 과정] 사이의 직접적인 동일성을 판매와 구매라는 대립형태로 분열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독립해서 서로 대립해 있는 이들 두 과정이 하나의 내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이들 두 과정의 내적인 통일이 외적인 대립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서로를 보완하면서 내적으로 의존해 있는 이들 두 과정의 외적인 대립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내적인 통일은 공황(Krise)을 통하여 폭력적인 형태로 관철된다. 상품에 내재하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 사적 노동이 동시에 직접적으로 사회적 노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대립, 특수한 구체적 노동이 동시에 추상적 일반적 노동으로만 간주되는 대립, 물적 존재의 인격화와 인격의 물화라는 대립 - 이런 내재적 모순은 상품의 형태변화가 빚어내는 갖가지 대립을 통해서 더욱 발전된 운동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이들 형태는 이미 공황의 가능성[또한 그것만]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이 실제 현실로 발전하려면 단순 상품유통 수준에서는 아직 전혀 존재하지 않는 좀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들이 갖추어질 필요가 있다. (ㄱ판, 184; M127~128)


판매와 구매는 동시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판매자가 판매 이후에 바로 구매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로든 상품이 판매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외적인 대립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공황이라는 폭력적인 형태로 내적 통일이 관철되고 만다. 강조한 부분은 번역이 빠졌다. 


이 논의는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과 상품유통의 차이를 무시한 경제학의 변호론적 특징과 공황의 불가능성을 주장한 세이를 비판하는 각주 73(ㅂ판은 각주 24)로 이어진다. 이들은 생산물 교환과 상품유통을 동일시하고 판매와 구매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공황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물론 틀렸다). 제임스 밀(J. S. 밀의 아버지)이 어떤 주장을 했는지 보자. 


모든 상품에 있어서 구매자 부족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제공하는 자는 언제나 그것과 교환해서 한 상품을 요구하며 따라서 그가 판매자라는 단순한 사실에 의해 그는 구매자이다. 따라서 구매자와 판매자를 모두 합치면 형이상학적 필연성에 의해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 상품의 판매자가 구매자보다 많다면 다른 한 상품에서는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많을 것이 틀림없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89)


위 인용은 밀이 한 말인데, 판매와 구매의 균형 이야기가 바로 "상품유통은 판매와 구매 사이의 필연적인 균형을 낳는다는 황당무계한 이론"(ㅂ판, 145). 그러니까 이들은 상품유통과 물물교환의 엄연한 차이를 무시하기 때문에 이런 허황한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세이의 주장에 대하여. 


상업공황에 관해 시스몽디 및 맬서스와 논쟁하면서 J. B. 세이는 얌전한 착상을 채용하는데, 어떤 새로운 착안으로써 이 웃기는 '과학의 왕자'가 정치경제학을 풍부하게 했는지는 - 그의 업적은 오히려 그가 그의 동시대인인 맬서스, 시스몽디, 리카도를 똑같이 오해한 비당파성에 있다 - 말할 수 없으므로 그를 경탄하는 대륙인들은 그를 판매와 구매의 균형이라는 보물의 발견자로서 떠벌렸다. (같은 곳)

 

공황은 있을 수 없다는 밀의 말을 따다가 씀으로써 공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해주는 마르크스의 센스... 


밀은 유통과정을 직접적인 물물교환으로 전환시키지만 다시 직접적 물물교환에는 교환과정으로부터 표절한 구매자 및 판매자 형상들을 밀수해 들어옴으로써 균형을 회복시킨다. 그의 혼란스러운 언어로 이야기하다 보면 예를 들어 런던과 함부르크에서 1857~58년 상업공황의 일정 기간 동안에서처럼 모든 상품이 판매 불가능한 그러한 순간들에는 사실상 상품, 즉 화폐는 판매자보다 구매자가 더 많고 다른 모든 화폐, 즉 상품들은 구매자보다 판매자가 더 많다. 구매와 판매의 형이상학적 균형은 각 구매가 판매이고 각 판매는 구매인 것으로 제한되는바, 균형에 의해 판매에도 구매에도 끌리지 않는 상품감독자들에게는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같은 책, 89~90, 강조는 원문, 밑줄은 내가 했음)

 


(재정리: 2013.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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