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제2절에서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구체적인 유용노동과 상품가치를 형성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노동의 이중성을 다루었고, 이제 제3절에서는 교환가치, 가치형태를 다룬다. 상품은 사용가치의 형태, 현물형태(일판에서는 "자연형태")로 나타나며, 상품이 되려면 "사용대상이자 가치의 담지자"여야 한다. ...그런데 대체 그 가치란 놈은 어디에 있는 거야?
상품은 철 · 아마포 · 밀 등과 같은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이것이 상품의 평범한 현물형태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품인 것은 그것들의 이중적인 성격, 즉 사용의 대상임과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오직 이중적 형태[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지는 경우에만 상품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상품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 (ㅂ판, 59; M62)
상품의 가치대상성(Wertgegenständlichkeit), 즉 가치로서의 상품은 어디에서 그것을 포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1는 점에서 퀴클리 부인*2과는 다르다. 상품체의 대상성[즉 상품체로서의 상품]은 감각적으로 분명하게 포착되는 데 반해 가치로서의 상품에는 단 한 조각의 자연소재도 들어 있지 않다. (ㄱ판, 103; M62)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실재에는 [상품체의 감각적이고 거친 객관적 실재와는 정반대로] 단 한 분자의 물질도 들어 있지 않다. (ㅂ판, 60; M62)
상품체의 거칠거칠한 대상성과는 정반대로, 상품의 가치대상성에는 원자 하나의 자연소재도 들어 있지 않다. (일판)
둘째 인용 문단에 달린 각각의 日註 :
*1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제1부 제3막 제3장에서 폴스타프의 대사 참조.
*2 셰익스피어의 위 극에 등장하는 싸구려 술집의 수다스러운 여주인. 허풍선이 호색한인 폴스타프의 험담에 곧바로 보복한다.
문제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말하자면 "물고기도 네발짐승도 아니어서 남자로서는 그녀가 뭔지(그녀를 뭘로 봐야 할지) 모른다"는 폴스타프의 험담에 퀴클리 부인이 "뭘 몰라, 당신도 알고 모든 남자들이 다 안다" 대꾸하면서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더 보고 싶으면 여기 참조. 폴스타프는 제4판 서문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FALSTAFF
Why, she's neither fish nor flesh; a man knows not where to have her.
(=Because she’s not quite a fish and not quite a mammal. A man wouldn’t know where to put her.)
MISTRESS QUICKLY
Thou art an unjust man in saying so; thou or any man knows where to have me, thou knave, thou!
(=You’re awful for saying so: you or any man would know where to put me, you brute, you!)
그럼에도 상품은 그것이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단위의 표현일 때에만 가치가 되며, 따라서 그 가치로서의 성격이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가치로서의 상품(가치대상성)은 오직 상품과 상품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해진다. (ㄱ판, 103)
상품의 가치관계에 포함된 "가치표현의 전개를 가장 단순한 모습에서 눈을 속이는(blendenden Geldform)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추적하는 것"(일판)이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ㄱ판이나 ㅂ판은 "휘황찬란한 화폐형태" "극도로 현란한 화폐형태"라고 했지만, 화폐형태가 '눈속임한다'는 일판의 표현이 나름 더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싶다.
A.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
또는 x량의 상품 A는 y량의 상품 B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20엘레의 아마포 = 1벌의 웃옷
또는 20엘레의 아마포는 1벌의 웃옷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1. 가치표현의 양극 -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은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이 가치형태의 분석이 우리의 중요한 난관이다. (ㅂ판, 61; M63)
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로 표시되고 있다. 즉 그것은 상대적 가치형태(relative Wertform)로 존재한다. 웃옷은 등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등가형태(Äquivalentform)로 존재한다. (ㄱ판, 104~105)
The value of the linen is represented as relative value, or appears in relative form. The coat officiates as equivalent, or appears in equivalent form. (MIA)
위의 식에서 아마포는 자신의 가치를 웃옷으로 표현하고, 능동적 역할을 하며, 상대적 가치형태.
윗옷: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는 재료 역할, 수동적 역할이며, 등가형태.
일판을 보면 "appears in relative form"을 "相対的価値形態にある" 즉 "상대적 가치형태에 있다"고 옮긴 것을 볼 수 있다. "appears in equivalent form"은 "等価形態にある". 이는 ㄱ판이나 ㅂ판이 "~로 존재한다" "~로 있다"로 옮긴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MEW에서는 in, 아마도 '~에'로 보면 될 것 같다. 여하간 '~로서'와는 좀 다르다. '~로서 있다'와 '~에 있다'의 차이는 어떻게 보면 좋을까.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이 지금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를 다룬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형태로서 존재한다기보다는 상대적 가치형태가 될 수 있는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상대적 가치형태라는 것 '안에 있다' 정도가 아닐까 한다. 임의의 상품 아마포와 웃옷이 우연히 가치관계 안에 들어왔는데, 아마포는 상대적 가치형태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웃옷은 등가형태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 상대적 가치형태나 등가형태 안에 올 수 있는 것들은 개별적이고 우연적이다.
동일한 상품, 가령 아마포는 동일한 가치표현에서 두 가지 형태를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상대적 가치형태에 있든가, 아니면 등가형태에 있어야지 둘 다에 같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2. 상대적 가치형태
가.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
종류가 다른 두 사물의 크기를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이들을 모두 동일한 단위로 환산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ㄱ판, 106; M64)
비교를 하려면 반드시 동일한 단위로 환산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통의 척도가 없이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웃옷 얼마가 아마포 얼마와 가치가 같든, 그 양이 얼마나 되든 간에, "이러한 비율은 가치크기로서는[ㄱ판에서는 이 구절 번역이 빠졌다] 동일한 단위를 통해서 가치를 표현한다"는 것과 "이들이 동일한 성질을 가진 물건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아마포가 자신의 '등가(물)' 또는 자신과 '교환될 수 있는 물건'인 저고리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의 가치를 표현한다. 이 관계에서 저고리는 가치의 존재형태[즉 가치의 물적 형상]로 간주된다. (ㅂ판, 63; M64)
그것은 아마포가 웃옷과의 관계를 자신의 '등가물'로, 즉 자신과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이 관계에서 웃옷은 가치의 존재형태, 즉 가치물(가치물, Wertding)로서 간주된다. (ㄱ판, 106)
아마포가 그 '가치물'로서의, 또는 그것과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웃옷에 대해 갖는 관계에 의해서이다. 이 관계 안에서는 웃옷은 가치의 실존형태로서, 가치물로서, 통용된다. 왜냐하면 단지 그런 것으로서만 웃옷은 아마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일판)
ㄱ판보다는 ㅂ판의 번역이 더 정확하게 읽힌다. 아마포가 그러한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웃옷을 만드는 재단노동은 아마포를 만드는 방직노동과 서로 다른 구체적 노동이다. 그러나 방직노동과 등치됨으로써 재단노동은 두 가지 노동 모두에서 사실상 같은 성질, 즉 인간노동이라는 공통의 성질로 환원된다. 이런 우회적인 경로를 거치면 방직노동 역시 그것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한, 재단노동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것, 즉 추상적 인간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ㄱ판, 107; M65)
아마포와 저고리가 공통의 단위로 환산되는 것처럼,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이라는 서로 다른 구체적 노동은 인간노동,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공통의 성질로 환원(환산)된다.
웃옷은 그것이 가치이기 때문에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서 아마포와 질적으로 동일한[즉 같은 성질을 가진] 물건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웃옷은 가치의 모습을 드러내는 물적 존재[즉 가치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물형태]로 표현하는 물적 존재의 역할을 한다. (ㄱ판, 108; M66)
아마포의 가치관계 안에서 옷옷이 아마포와 질적으로 같은 것으로서, 같은 성질을 가진 물건으로서 통용되는 것은 웃옷이 하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웃옷은 여기에서는 가치가 그것에 표현되는 물건으로서, 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자연형태로 가치를 표현하는 물건으로서 통용된다. (일판)
강조 부분은 말이 이상한데, 중괄호를 잘못 묶었기 때문이다. "웃옷은 가치의 모습을 드러내는 물적 존재[즉 가치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물형태로 표현하는 물적 존재]의 역할을 한다" 정도로 고치면 그나마 말이 되고, 물적 존재라고 할 것 없이 그냥 '물건'이라고 하는 게 더 낫다.
웃옷 속에는 인간의 노동이 쌓여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웃옷은 '가치의 담지자'(Träger von Wert)이다. 〔…〕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서 웃옷은 다만 이런 측면으로만, 즉 물화된 가치, 다시 말해 가치체로서만 간주된다. 단추를 채운 웃옷의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아마포는 그 웃옷 속에서 동족으로서의 아름다운 가치의 혼*을 알아차린다. (ㄱ판, 109; M66)
Und im Wertverhältnis der Leinwand gilt er nur nach dieser Seite, daher als verkörperter Wert, als Wertkörper. (MEW)
일판에서는 '물화' 대신 '체화'로 썼다. '물화'의 뜻이 '사물로 변하다'이므로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이 말이 소외론과 관련되어 많이 쓰이는 말이다 보니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verkörpern이 '구체화하다, 구현(具現)하다;의인화하다, (의) 화신이다' 등의 뜻이 있으니 '체화'나 '구체화' 정도로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웃옷은 '가치의 담지자'이지만 웃옷이 아무리 닳고 해져도 가치가 들여다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 들어왔을 때, 웃옷에 숨은 그 "동족으로서의 아름다운 가치"를 아마포만은 알아차린다. 닳고 해지기는커녕 단추를 꼭꼭 채운 쌀쌀맞은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일판을 보면 "단추를 채운 [쌀쌀맞은] 웃옷"이라고 중간에 귀여운 역주가 있다.)
"아름다운 가치의 혼"에 달린 日註: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제6권 부제 "아름다운 영혼"에서 따온 것.
이 글은 일인칭 서술자의 고백 형식으로 씌어져 있다. 일인칭 주인공이 자신을 "어느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므로 이 제목은 다른 사람이 붙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며, 사실 위의 제5권 제16장에서 이 '고백'의 원고를 입수한 '의사'가 자기가 붙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아름다운 영혼schöne Seele"이란 18세기에 널리 퍼져 있던 말로서, 일반적으로 천성이 착하여 그 영혼이 조화로운 사람을 가리키고, 실러에 의하면 '의무Pflicht'와 '취향Neigung'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인격체를 말하며, 원래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유래하는 개념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2, 안삼환 옮김, 민음사)
아마포라는 상품이 저고리(웃옷)란 상품으로 -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공통의 속성에 의해 - 자신의 가치를 표현한다, 두 상품은 가치라는 면에서 동등하다는 설명 끝에 앙리 4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앙리 4세의 이 말은 '파리는 (종교를 바꿔서라도) 가질 가치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독일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서 표현하기가 '부적절'한가 하면 日註를 보면 안다. 역주는 이럴 때 이렇게 달아야 하는 것이다!...
* 신구 양 기독교도의 격렬한 전쟁 중에, 1593년 신교도 앙리 4세가 구교도가 지배하는 파리로 진격할 무렵, 왕위에 오르는 데 장애가 되는 신교를 버리고 구교 가톨릭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을 때 했던 말. 슈리 대신(大臣)이 왕에게 개종을 권했을 때 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슈리의 말에서는 "파리" 대신에 "왕위"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이 말을 valoir의 용례로 쓰는데, 프랑스어에서는 vaut가 Paris 바로 다음에 오지만, 이에 비해 독일어에서는 wert가 주어와 떨어져 끝에 와버리므로 적절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럼 독일어로는 저 말이 어떻게 되느냐. "Paris ist eine Messe wert!" 역주에서 설명한 대로 Paris와 wert 사이가 떨어져 있다.
헤겔 『대논리학』 제2권 제1편 제2장 "본질성 또는 반성규정" 주해 참조. "반성규정은 질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라 〔…〕 그 자신 관계인 규정성 〔…〕 상호대립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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