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박사가 조사한 영국의 농업 프롤레타리아트(베드퍼드셔, 버크셔, 버킹엄셔, 케임브리지셔, 에식스, 히어포드셔, 헌팅던셔, 링컨셔, 켄트, 윌트셔, 워세스터셔)의 참혹한 주거상태 서술이 이어진다. 


이들 가족 각자가 차지하는 공간은 노 젓는 노예*(ㅂ판: 죄수) 한 사람에게 필요한 공간보다도 좁았다. (ㄱ판, 932; M717)


* 갤리선 조역수(漕役囚): 갤리선은 주로 지중해를 항해한 다수의 긴 노를 젓는 고대와 중세의 군선(軍船)으로, 포로나 노예에게 노를 젓게 했지만 후에는 중죄인에게 노를 저어 운송을 맡겼고, 18세기까지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징역수를 뜻함. 


이 분할차지(分割借地)*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집에는 변소가 없었기 때문에 일가족은 자신의 차지까지 가서 용변을 보든가, 또는 더러운 얘기이지만, 여기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듯이 장롱 서랍에 배설물을 넣어두어야 한다. (ㄱ판, 934; M718)


* 야채 재배용 등으로 빈민에게 대여된 분할지.


이 배드시에서 그는 손바닥만 한 땅에 대해 차지농업가보다 2배나 되는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ㄱ판, 937; M720)


* 여기까지의 주택 사정 서술은 헌터 박사의 보고서 148~302쪽에 의한 것이다.


도시로의 부단한 이주는 (…) 농촌에서의 부단한 ‘인구과잉’, 그리고 (…) 농촌인구의 부단한 추방 등과 함께 진행된다. (…) 농업노동자 수의 감소와 그들의 생산량 증대에도 불구하고, 농업노동자의 끊임없는 ‘과잉화’는 그들의 극심한 빈곤의 원인이 된다. (ㄱ판, 937~38; M720~21)


ㄱ판 938, 각주 170(M722; ㅂ판 950)에서 언급한 대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분할지제도가 만들어낸 독특한 농촌 프롤레타리아에 관해서 찾아보았다. 


분할지 농민은 거대한 대중을 형성하며 그 성원들은 많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유사한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생산양식은 상호 교류를 가져오지 못하고 서로를 고립시킨다. 그 고립은 프랑스의 열악한 교통수단과 농민의 궁핍 때문에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들의 생산의 터전인 분할지는 경작에 어떠한 분업도, 과학의 적용도 허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발전의 다양성, 능력의 차이, 풍부한 사회적 관계도 허용하지 않는다. 개개의 농가는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소비품의 대부분을 자신이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의 교류보다는 자연과의 교환을 통해 생활수단을 더욱 많이 얻는다. (…) 수백만의 가구가 자신의 생활양식, 이해관계, 문화를 다른 계급의 생활양식, 이해관계, 문화와 구별 지으며 그것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한, 그들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들 분할지 농민들 사이에 단순한 지방적 연계만이 있는 한, 그리고 그들 간의 이해의 동질성이 그들 간에 어떠한 공통성이나 전국적 결합, 정치적 조직 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그들은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다. (…) 보나파르트 왕조가 대변하는 것은 혁명적 농민이 아니라 보수적 농민이다. 분할지 경작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생활조건을 박차고 일어나는 농민이 아니라, 자신의 분할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농민, 도시와 연계하여 새로운 힘으로 구질서를 타도하고자 하는 농촌의 민중이 아니라 반대로 무감각하게 구질서 속에 갇혀 자신과 자신의 보유지를 제국의 유령에 의해 보장받고 축복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 지금 프랑스 농민을 파멸시키고 있는 것은 토지 분할, 즉 나폴레옹이 프랑스에서 확립한 소유 형태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봉건적 농민을 분할지 농민으로, 그리고 나폴레옹을 황제로 만들 물질적 조건이다. (…) 자본의 노예가 된 분할지 소유는 - 분할지 소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자본에 대한 예속 상태를 초래한다 - 프랑스 국민 대중을 혈거인으로 변모시켰다.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소나무, 266~70)


잉글랜드 동부에서는 이 악순환의 훌륭한 성과 - 이른바 작업단제도* - 가 빈번히 성행하고 있는데 (ㄱ판, 939; M722)


* 일판 689쪽(M421) 참조.


일판에는 “노동대(勞動隊)”, ㅂ판에는 “노동부대”인데, 이미 전에(제13장 기계와 대공업) 한 번 등장했다. 


소년소녀들과 함께 노동부대에서 노동하는 기혼여성들은 ‘대장’(부대 전체를 대신하여 계약한다)을 통해 일정한 금액을 받고 차지농업가의 처분에 맡겨진다. 이 노동부대는 때때로 그들의 촌락에서 수 마일이나 떨어진 지방까지 여행하는 수가 있다. (…) 버릇이 된 부도덕한 행동들로 말미암아 타락해 있고, 또 이러한 바쁘고 독립적인 생활방식에 대한 그들의 애착이 [집에서 시들고 있는] 자식들에 미치는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하지 않고 있다. (ㅂ판, 535; ㄱ판 539 참조)


각주 171 “제6차 최종 보고서”의 日註:


* 아동노동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제5차가 마지막으로, 노동대 제도 보고는 특별보고서로 간행되었다. 


차지농업가들은 여성들이 남성의 지휘 밑에서만 일을 잘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과 아동들은 한번 일을 하기 시작하면 참으로 맹렬하게 자기의 생명력을 지출하는데 - 푸리에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다* - 성인 남성노동자는 교활해 가능한 한 힘을 아끼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ㅂ판, 962~53; M723) 


* 푸리에, 『우주통일론』 제4권 등.


거친 방종이나 떠들썩한 소동, 외설적이기 짝이 없는 파렴치한 행위는 작업단에 날개를 달아준다. (…) 돌아오는 길에는 푸리에가 말하는 ‘난교’(亂交)*1가 매일같이 이루어진다. (…) 작업단의 인원을 공급하는 개방촌락은 소돔과 고모라*2가 되고 영국의 다른 지방들보다 2배나 많은 사생아를 낸다. 이런 학교에서 보고 들은 여자아이들이 부인이 되어 어떤 품행을 보이는지는 앞에서도 이미 얘기한 바 있다.*3 (ㄱ판, 941~42; M724)


*1  성교에 빠져 다산(多産)하는 부르주아적 결혼에 반대하여, 자유연애의 난교(일판: 公然交合)야말로 이상사회와 이상적 부부생활에 적합한 적정 인구를 만든다고 한다. 푸리에, 『산업적 조합적 신세계』, 파리, 1829, 제5편 제35장과 36장 보족. 또 제6편 요약.

*2  요르단 저지(低地) 마을에서 도덕적 퇴폐의 결과 신이 하늘에서 내린 불로 멸망했다. 구약 창세기 13:13, 18:1~19:29 참조.

*3  일판 689~91(M421~22, ㄱ판 539~40, ㅂ판 534~35), 856~58(M522~23, ㄱ판 663~64, ㅂ판 667~69) 참조. 


작업단제도[ㅂ판: 노동부대제도]는 최근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그것이 단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대규모 차지농업가나 대지주의 치부를 위해서 존재한다. 차지농업가에게는, 자기 휘하에 정상수준보다 훨씬 적은 작업인원만을 두고서도 늘 초과작업을 위한 별도의 일손을 준비할 수 있고 또 최소한의 화폐로 최대한의 노동을 짜내어 성년 남자노동자를 ‘과잉상태’로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교묘한 제도가 없다. (…) 링컨셔 등지의 잡초 없는 밭과 인간 잡초*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극과 극인 것이다. (ㄱ판, 942~43; M725)


* 프랑스어판에는 “인간 잡초” 대신에 “더러워진(타락한) 그 경작자”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 눈앞에 대규모로 전개되는 과정은, 정통파 경제학이 자신의 도그마 - 즉 빈곤은 절대적 인구과잉에서 비롯된 것이고 따라서 균형은 인구의 감소에 의해서 회복된다는 주장 - 를 입증하는 데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이것은 맬서스파가 그토록 찬미했던 14세기 중엽의 페스트*와는 별개의 또 하나의 중요한 실험인 것이다. (ㄱ판, 949; M731)


* 일판 472쪽 역주 1(제8장 노동일 M287) 참조. 1347년부터 유럽 대부분에 맹위를 떨친 페스트는 1348~49년에 영국을 덮쳐 인구의 격감을 초래했다.  


1846년의 아일랜드 기근 때문에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는데, 그들은 모두 가난뱅이들이었다.*1 그러나 이 기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부는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인구유출은 그뒤 20년 동안 계속되어 지금도 여전히 심화하고 있지만, 30년전쟁*2의 경우처럼 인간과 함께 그 생산수단마저 감소시킨 것은 아니었다. (ㄱ판, 950; M731~32)


*1  1845년 감자 흉작이 다음 해부터 심각해져 아사, 전염병(티푸스, 콜레라) 죽음이 늘어나 이후 10년 동안 사망과 이민으로 인구가 3분의 1로, 농촌 인구는 반 이하로 감소했다. 반면 그 사이에도 식량은 증산되고 지주는 살쪘다. 아일랜드인은 말했다. “신은 감자마름병을 주시고 영국 지주님은 기근(饑饉)을 주신다.”

*2  1618~48년 독일의 신구 양 기독교 제후의 싸움으로 네덜란드를 시초로 유럽 제국의 제후들이 간섭해 독일을 황폐하게 한 종교전쟁.


구빈법 감독관의 보고서에는 취업의 불안정과 불규칙성, 노동 중단의 빈발과 장기적 지속 등과 같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모든 징후가 아일랜드 농업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고충으로 나타나고 있다. (…) 잉글랜드에서는 농업부문의 과잉인구가 공장노동자로 전화한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는 도시로 쫓겨난 사람들이 도시의 임금에 압박을 가하면서도 여전히 농업노동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농촌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ㄱ판, 956; M736)


이것이 바로 인구감소라는 위대한 맬서스의 만병통치약에 의해서 게으름뱅이의 천국*으로 변해버린 푸른 에린(아일랜드의 옛 이름-옮긴이)의 모습이다! (ㄱ판, 956; M736)


* 중세 전설에서 유래한 무위(無爲)와 사치의 환상의 나라로, 과자의 나라 등으로서 시(詩)로도 불린다. 


1866년 말과 1867년 초 아일랜드 대지주의 한 사람인 더퍼린 경은 『타임스』지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그 훌륭한 양반의 인간다움이란!”* (ㄱ판, 957~58; M737)


* 괴테, 『파우스트』 제1부, 352~53행.


위대한 주님으로서는 너무 마음씨가 고와서, 

악마까지도 이처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것이겠지. (『파우스트 1』, 문학동네, 30쪽)


사실이란 아일랜드의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아일랜드의 지대는 증가한다는 것, 인구의 감소는 토지소유자에게 유리하며*1 따라서 또 토지에도 유리하며 따라서 또 [토지의 부속물에 불과한] 국민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려면 아일랜드는 적어도 30만~40만의 노동자를 더욱 방출해야 한다고. 시인(詩人)이기도 한 이 귀족을 단순히 상그라도(Sangrado)파*2 의사[자기 환자의 병이 차도가 없음을 발견할 때마다 계속 피를 빼라고 지시해 드디어 그 환자의 피도 병도 남지 않게 만드는 의사]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ㅂ판, 973~74; M738)


*1  신약성서 히브리서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2  르사주의 『질 블라스』의 주인공이 제자로 들인 의사로 사혈(瀉血)이 만병을 고친다고 한다.  


먹다 보면 식욕이 나게 마련이므로*1 내친김에 지대장부를 살펴보면 다음의 사실이 드러난다. 즉 인구 350만의 아일랜드는 여전히 궁핍하고 또한 이 궁핍은 인구과잉 때문이므로, 잉글랜드의 목양장이자 방목장이라는 아일랜드의 진실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인구감소가 더욱 진척되어야만 한다. (…) 아일랜드의 지대축적과 더불어 아메리카에서 아일랜드인의 축적이 진행된 것이다. 양과 소에 의해 쫓겨난 아일랜드인은 대양의 저편에서 페니어(Fenier)*2 회원으로 다시 나타난다. (ㄱ판, 959~60; M739~40)


*1  라블레, 『가르강튀아』 제1책 제5장.

*2  무장봉기에 의해 아일랜드 독립 달성을 노리는 비밀결사. 1857년 아일랜드와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결성. 아메리카에서 페니아 형제단으로 활동했으나 탄압을 받고 1870년대 이후 시들해졌다. 


농업혁명을 강행하여 아일랜드 인구를 대지주들의 기분에 맞을 정도까지 줄이기 위해서 각 지주들과 잉글랜드 법률이 기근과 그것이 빚어내는 상황을 어떻게 계획적으로 이용하였는지에 대해서 나는 이 책의 제3부 토지 소유에 관한 편에서 상술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또한 소(小)차지농업가와 농업노동자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언급할 것이다.*1 여기에서는 인용을 한 가지만 해둔다. (ㄱ판, 960, M740)


ㄱ판에는 강조한 짧은 문장이 빠졌다. 


1815~1846년 시기에는 영국의 농학자, 경제학자, 정치가들이 아일랜드의 토지가 비옥하다는 것을 찬양하고 그 토지는 천연적으로 밀 재배에만 적합하다고 소리 높여 외쳤는데, 이제 와서 그들은 갑자기 그 토지가 목초 생산 이외에는 아무 데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드 라베르뉴*2는 해협 저편에서 서둘러 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3 (ㅂ판, 975; M740)


*1  현재 자본론 제3권에는 제6편(초과이윤의 지대로의 전화) 제37장(서론)과 제47장(자본주의적 지대의 발생사)에 소차지농장경영자에 대해 간단히 언급될 뿐이다. 

*2  프랑스 정치가, 경제학자.    

*3  라베르뉴, 『영국의 농업경제』, 파리, 1854.




  1. 아몬드문어 2013.08.08 04:30

    길판 941-942에 나오는 푸리에의 '난교'는 찾아보니 이제는 쓰이지 않는 식물 분류법인 민꽃식물, 꽃식물(phanerogamie)에서의 phanerogamie 였습니다. 펭귄 852의 별표 각주에서는
    Charles Fourier, Le Nouveau Monde industriel et societaire, Paris, 1 829,
    Part 5, Supplement to Chapter 36, and Part 6, Summary. Here Fourier
    describes 'phanerogamie ' as a means of limiting the population. It is a form of polyandry practised within the phalanx, that is, the communal unit which was to replace the family, and is compared explicitly by Fourier himself with the sexual behaviour of various tribes in Java and Tahiti.

    자본론의 맥락상으로는 그냥 문란한 성교를 표현하는 말로 쓰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난교'라는 번역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 같습니다. 푸리에는 일처다부 종류의 대안가족 형태를 고민한 것 같은데 마르크스는 그러한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가족'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걸까요?

    • Favicon of https://gdproofreader.tistory.com BlogIcon ienai 2013.08.10 12:44 신고

      아, 그렇군요. 저는 일판 편집자 주만 보고 펭귄판은 찾아볼 생각을 못했는데... phanerogamie는 종자식물, 꽃식물을 말하고 푸리에는 "적정 인구를 만드는" 방법으로서 polyandry(일처다부제)를 주장한 모양이군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생각이었을 듯합니다. 여하간 저 말은 작업단의 문란한 생활을 비판하는 가운데 등장했으니 '난교'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아 보이고 마르크스는 푸리에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생각보다는 단순히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가족'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저도 아는 바가 없어서, 관련 책을 좀 읽어보면 재미있겠는데 말이죠.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읽어보셨나요? 언제 이걸 꼭 좀 읽어보아야 하는데...

  2. 아몬드문어 2013.08.13 16:52

    고고인류학(?) 수업에 쓸 게 없어서 어거지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독후감을 써낸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앞부분과 결론만 읽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모건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인류 성애 관계의 역사 분석, 가족의 탄생과 사유재산, 그리고 일부일처제, 국가의 형성 등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엥겔스는 근대 프로테스탄트적 일부일처제의 기만성, 억압을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극복되어야만 진정한 성애, 사랑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가족형태에 대해서는 별 얘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부르주아지들이 도덕적으로 경멸했던 프롤레타리아들의 파편적 가족, 좁은 공간에서의 공동 주거 등등을 엥겔스는 양면적으로('영국 노동 계급의 상태'에서는 그저 열악한 삶의 조건으로, '가족, 사유재산...'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일부일처제의 기만성이 제거된 상태로) 보았던 것 같고, 그러한 프롤레타리아적 가족 해체의 방향에 희망적인 입장을 가졌었던 걸로 저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의 조건을 드러내는 방향에서 노동자들이 좁은 공간에서 남녀노소 우글우글 모여사는 것, 일하는 여성들의 '방종'과 '도덕적 타락' 등등을 걱정하는 입장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직접적 언급은 없으니 마르크스가 가족을, 또는 새로운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가족은 헤겔의 주요범주중 하나이니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 독일철학 비판 저작에서 무언가 의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gdproofreader.tistory.com BlogIcon ienai 2013.08.16 15:09 신고

      자본주의가 극복된다고 해서 진정한 성애가 가능할까, 그다지 수긍이 되지 않지만, 여하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역시, 헤겔까지는 읽고 싶지 않아요...

      도움되는 댓글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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