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유통수단
b. 화폐의 유통*

* 영어판 번역자(무어와 엥겔스)의 주. “이 언어(currency, 독일어로는 Umlauf)는 여기서는 그 원래 의미, 즉 화폐가 손에서 손으로 건너갈 때 화폐가 나아가는 과정 혹은 경로라는 의미로 쓰고 있으며, 유통(流通)[circulation, Zirkulation]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과정이다.

 

ㄱ판과 ㅂ판 모두 “화폐의 유통(流通)”을 쓰지만 일판에서는 “화폐의 통류(通流)”로 유통과 다른 말을 써서 의미를 더욱 정확하고 엄밀하게 옮기고 있다. 유통은 순환이지만 통류는 출발점에서 계속 멀어져가는 흐름이지 순환은 아니라는 점에서 둘은 서로 다르다.

 

노동생산물의 물질대사가 완수되는 형태변환 C - M - C는, 동일한 가치가 상품으로서 과정의 출발점이 되고, 또 상품으로서 다시 동일한 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상품운동은 순환(循環)이다. 다른 한편, 이 운동형태는 화폐를 순환으로부터 배제한다. 그 결과 화폐가 그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리 떨어져나가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일은 없다. (…) 상품유통이 화폐에 직접 부여하는 운동형태는 화폐가 출발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져간다는 것, 화폐가 어떤 상품소유자의 수중으로부터 다른 상품소유자의 수중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화폐의 유통[일판: 通流]이다. (ㅂ판, 147; M 128~29)

 

우리는 화폐유통(통류)이라는 현상을 보고 있지만 그 본질은 상품유통이다.

 

화폐 운동의 이런 일면적인 형태가 상품의 양면적인 형태변화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은폐되어 있다. 상품유통의 본질은 오히려 그것과 반대된 모습을 보여준다. (ㄱ판, 186; M129)

 
강조 부분은 이상하다. ㅂ판은 “상품유통의 성질 그 자체가 바로 이러한 외관을 빚어낸다”이며 일판은 “상품유통 그 자체의 본성이 그것과 반대의 외관을 낳는다(商品流通そのものの本性が、それと反対の外観を生み出す)”이다.

 

상품의 제1형태변화는 화폐의 운동뿐만 아니라 상품 자신의 운동으로도 보이지만, 상품의 제2형태변화는 화폐의 운동으로만 보인다. 상품은 그 유통의 전반부에서 화폐와 자리를 바꾼다. 그와 동시에 유용물로서의 상품의 모습은 유통에서 빠져나와 소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 대신 우리는 거기에서 상품의 가치형태 또는 화폐형태만을 보게 된다. 상품은 벌써 그 자신의 자연적인 외피가 아니라 금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유통의 후반부를 통과한다. (ㄱ판, 186; M129)

 

그 자리를 상품의 가치모습[즉, 화폐라는 유충(幼蟲)]이 차지한다. (ㅂ판, 148)

 

상품의 가치자태(價値姿態) 또는 화폐가면(貨幣假面)이 상품을 대신한다. (일판)

 

강조 부분이 있는 문장의 번역이 판본마다 조금씩 다른데, 원본에 있는 geldlarve를 살린다면 역시 일판이 가장 적절하다. 독일어 larve는 ‘가면, 유령’을 뜻하고 라틴어 larva(환상, 유령)과 관련이 있다. 영어 larva는 ‘유충, 악령’을 뜻한다. 전에 ‘번데기’에 관한 논의에서 화폐라는 금번데기를 이야기했는데, 여기서는 화폐라는 가면이 상품의 자리에 들어오는 셈이다. 화폐가면에 대한 좀더 자세한 논의는 “(52) 화폐유충?” 참조.

 

외관상으로는 상품유통이 유통수단인 화폐의 기능에 따라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상품의 형태변환에 따른 것이다. W - G - W(또는 C - M - C)를 상품의 입장에서 보면 두 개의 반대되는 과정이지만 화폐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동일한 과정("화폐와 다른 상품의 끊임없는 자리바꿈")이다. 외관상으로는 유통수단인 화폐가 상품을 유통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질은 상품의 형태변환에 의해서 상품유통의 결과가 매개되는 것이다. “유통은 단지 현상을 보여줄 뿐이다”(ㄱ판, 192).

 

화폐는 끊임없이 상품이 차지하고 있던 유통장소를 차지하며,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출발점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져나가면서, 상품을 끊임없이 유통영역으로부터 끌어낸다. 그러므로 화폐유통은 사실상 상품유통의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외관상으로는 반대로 상품유통이 화폐운동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 (ㅂ판, 148; M130)

 

日註에 따르면 ㄱ판 187쪽 첫째 문단(ㅂ판 149)은 프랑스어판에 의해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글을 바꿔 쓴 부분이다. 그중에서 판본마다 다른 번역이 있다.

 

이들 두 형태변화는 모두 상품과 화폐의 교환, 즉 상품과 화폐 상호간의 위치 변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동일한 실물화폐가 소외된 상품의 형태로서 판매자의 손에 들어가고, 동시에 절대적으로 양도 가능한 상품의 형태로서 판매자의 손을 떠난다. (ㄱ판, 187; M130)

 

동일한 화폐조각이 상품의 양도된(alienated) 모습으로 판매자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절대적으로 양도가능한 형태의 상품으로 그 수중으로부터 떠나간다. (ㅂ판, 149)

 

일판에서 강조 부분은 각각 “상품이 탈피한 자태”, “절대적으로 양도 가능한 자태”다. W - G를 화폐가 “상품의 양도된 모습”으로 판매자에게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상품이 ‘탈피한’ 자태라는 표현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형태변화, Metamorphose니까...

 

동일한 실물화폐가 계속 반복적으로 자리를 바꾸는 과정 속에는 단지 어떤 한 상품의 형태변화 과정뿐만 아니라 상품세계 전체의 무수히 많은 형태변화들 간의 복잡한 관계도 함께 반영되어 있다.* (ㄱ판, 187; M131)

 

* 이 문장은 프랑스어판에 의해 엥겔스가 삽입한 글.

 

새로 조정된 상품가격이 얼마나 일반화되었는지에 따라서, 또 상품들의 가치가 새롭게 하락한 귀금속의 가치에 얼마나 잘 맞추어서 평가되는지에 따라서, 상품가격의 실현에 필요한 귀금속의 양이 과잉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새로운 금이나 은 광산의 발견이 빚어낸 여러 현상을 일면적으로만 관찰함으로써 17세기와 18세기에 나타난 상품가격의 등귀현상이 유통수단으로 사용된 금과 은의 증가 때문이라고 하는 잘못된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ㄱ판, 189; M132)

 

일판에서는 “귀금속의 추가 총량도 이미 존재한다”로 되어 있다. 이어지는 설명은 일정 기간의 유통과정에서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량을 구하는 과정인데, 간단히 말하면 상품가격 총액을 동일한 명칭의 화폐조각의 유통[통류] 횟수로 나눈 것이다. ㄱ판에서는 “동일한 화폐량‘이라고 쓰는데 ”동일한 명칭의 화폐조각“(동일한 貨幣片 - 일판)이 정확하다.

 

화폐유통[통류]은 상품의 유통과정을 반영한다. 화폐유통의 속도가 빠르고 느림에 따라 상품의 형태변환의 속도, 사회적 물질대사의 속도, 상품 교체 속도 등이 달라진다. 유통에 정체가 생겨도 이 정체가 왜 생기는지 유통은 말해주지 않는다. 답답한 사람들은 그 현상만을 보고 '유통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이런 통속적 견해로는 유통수단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보는 이른바 화폐수량설이 대표적으로, ㅂ판 각주 28 또는 ㄱ판 각주 77에서 보듯 화폐수량설은 역사가 오래된 이론이다. 하지만 유통수단을 증가시킨다고 해서 "상품의 본성에서 비롯되어 상품유통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제거할 수는 없다. 

 

헤렌슈반트*의 망상은 상품의 본성에서 비롯되어 상품유통을 통해서 나타나는 모든 모순이 유통수단의 증가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ㄱ판, 193; M134)

 

* 19세기 초에 죽은 스위스 경제학자.

 

ㅂ판 각주 29 또는 ㄱ판 각주 78에서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가 화폐를 단순한 상품으로 고찰함으로써 유통하는 화폐량 문제를 외면하는 것을 비판하지만 한편으로 화폐유통량에 관해 올바른 설명을 하는 부분(“유통의 수로(水路)는 그것을 채우기에 충분한 금액을 필연적으로 끌어들이며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도 있다고 칭찬한다. 분업에 대한 스미스의 견해 또한 일관되지 않고 예찬과 폄하를 오간다는 것인데, 분업에 대한 비판은 日註에 따르면 제4편 제12장 분업과 매뉴팩처의 제4절 “매뉴팩처 내 분업과 사회 내 분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품가격은 유통수단의 양에 의해 결정되며, 유통수단의 양은 또한 한 나라에 존재하는 화폐재료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환상은, 그 최초의 주창자들이 채택한 엉터리 가설 ― 즉 상품은 가격을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며, 또 화폐도 가치를 가지지 않고 유통과정에 들어가, 거기에서 잡다한 상품집단의 일정한 부분이 귀금속더미의 일정한 부분과 교환된다 ― 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비봉, 158)

 

제3장 곳곳에서 화폐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은데 여기서도 마지막에는 유통수단으로서 화폐에 대한 환상, 특히 여기서는 “상품가격이 유통수단의 양에 의해 결정되며 유통수단의 양은 한 나라에 존재하는 화폐재료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화폐수량설을 비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등장하는 이름들만 해도 밴더린트, 흄, 바번, 몽테스키외, 리카도, 제임스 밀, 오버스톤, 특히 J. S. 밀의 “절충주의적 논리”를 집중 비판한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M133 이하에 "유통수단 및 화폐에 관한 제 이론"이라는 제목으로 흄, 리카도, 제임스 밀 등 당시 경제학자들의 화폐이론에 대해 마르크스가 비판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일부만 발췌한다.

 

흄은 결론짓기를 가치척도의 가치변화, 즉 계산화폐로서 기능하는 귀금속들의 가치변화는 상품가격을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키고, 그리하여 회전속도가 불변이라면 유통되는 화폐량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므로 상품가격의 상승이나 하락은 유통되는 화폐량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 가격이 없는 상품들과 가치가 없는 금과 은을 그는 유통과정에 들어가게 한다. 따라서 그는 결코 상품들의 가치와 금의 가치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상관적인 양에 관해서만 말한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청사, 158~159쪽; M138~139)

 

그[제임스 밀]는 상품들의 가격 또는 화폐의 가치가 “한 나라에 존재하는 화폐의 총량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유통되는 상품들의 양과 교환가치가 불변이고 유통속도는 줄어들지 않고 생산비에 의해 규정된 귀금속들의 가치가 불변이라고 가정하고, 더욱이 그것과 동시에 유통되는 금속화폐량이 그 나라에 존재하는 화폐량에 비례해서 증가하거나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증명하려고 했던 것을 가정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 밖에도 밀은 흄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들이 아니라 사용가치들을 유통시키는 오류에 빠지며 따라서 그의 모든 ‘가정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의 명제는 틀렸다. (178~79; M154~55)

 

 

 

 
(재정리: 201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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