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임금의 국가별 차이

(ㅂ판: 제22장 임금의 국민적 차이; 일판: 임금의 국민적 相違)




나라마다 다른 임금을 다루려면 어떻게 할까. 생필품 가격도 다르고, 노동자의 육성비나 노동생산성이나 노동시간이나 다 다를 텐데. 그러니 기준이 필요할 테고, 환산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똑같은 산업부문에서의 평균 하루 임금은 똑같은 크기의 노동일로 환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루 임금을 조정한 다음에는 시간급을 성과급으로 환산해야만 한다"(ㄱ판, 767; M583).


각각의 나라에는 일정한 평균적 노동강도가 있는데, 이 평균강도보다 낮은 노동은 일정한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며, 따라서 정상적인 질의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주어진 나라에서는 국민적 평균수준보다 높은 강도만이 노동시간의 단순한 길이에 의한 가치의 측정을 변경시키게 된다. 그러나 [개개의 나라들이 그 구성부분으로 되어 있는] 세계시장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평균적 노동강도는 나라에 따라 다르며, 어떤 나라에서는 높고 어떤 나라에서는 낮다. 그러므로 이러한 국민적 평균들은 하나의 등급을 이루는데, 그것의 측정단위는 전세계적 노동의 평균강도이다. 따라서 강도가 더 높은 국민노동은 강도가 더 낮은 국민노동에 비해 같은 시간에 더 큰 가치를 생산하며, 이 가치는 더 많은 화폐량으로 표현된다. (ㅂ판, 758; M583~84)


자본주의가 더 발달한 나라와 덜 발달한 나라는 같은 노동시간에 생산한 상품량, 그 국제적 가치가 다르다. 화폐의 상대적 가치는 전자가 후자보다 작을 것이고 명목임금도 전자가 후자보다 높을 것이다. 실질임금도 더 크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임금은 전자가 후자보다 높지만 노동의 상대가격은 후자가 더 높게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영국 회사들은 철도 부설공사를 수행했는데, 이들 공사에서는 토착노동자들 외에 일정 수의 영국인 노동자들도 함께 고용하였다. 그리하여 노동강도의 국가별 차이가 계산되어야 할 실제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영국 회사들은 그로 인해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았다. 〔…〕 임금의 크기는 어느 정도 중간수준의 노동강도에 따라 변동하지만 노동의 상대가격(생산물에 대한)은 대개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ㄱ판, 770~71; M586~87)


H. 케리(Henry Charles Carey) 등장. (ㄱ판은 케어리, ㅂ판은 캐리, 표기가 제각각인데,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케리다. 머라이어 케리Mariah Carey도 이 케리다. 그러나 캐리로 표기하는 게 대세...) 미국 경제학파의 창시자라는 평가도 있고, 보호무역주의 지지자라고. 『맑스사전』을 보면 그의 아버지가 출판업을 해서 아버지 뒤를 이어 출판업을 하다가 그만두고 경제학을 독학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1850년대에 마르크스가 시론을 기고하던 『뉴욕 데일리 트리뷴』의 편집자를 역임하기도 했고, "리카도에 대한 비판 · 대항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임금은 노동생산성과 반대로 움직이는데, 이 사람은 "각 나라의 임금은 그 나라의 노동일의 생산성 수준에 정비례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케어리가 [늘 하는 대로 아무 비판 없이 피상적으로 주워모은 통계자료들을 마구 뒤섞지 않고] 설사 자신의 가정을 잘 입증했다 하더라도, 이 결론이 엉터리라는 것은 잉여가치 생산에 관한 우리의 전체 분석을 바탕으로 잘 알 수 있다. 그래도 그가 현실이 자신의 이론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주장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ㄱ판, 771; M587)


* 에 달린 日註:

이 문장은 프랑스어판에서는 "그러나 결국, 그는 실제가 그의 이론을 거스르고 있다고 고백한다"고 되어 있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국가의 간섭에 의해서만 그 자유롭고 조화로운 작용을 교란당하는] 영원한 자연적 · 이성적 법칙으로 선언해놓고, 그런 다음 세계시장에 대한 영국의 악마적인 영향 〔…〕 때문에 국가의 간섭[즉 국가에 의한 자연적 · 이성적 법칙의 보호, 다시 말해서 보호무역제도]이 필요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ㄱ판, 771; M587)


그러니까 국가가 간섭 안 하고 냅두면 경제는 알아서 잘 돌아간다는 한국 재벌과 보수언론들이 매우 좋아하는 논지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간섭하지 마, 규제하지 마! 그런데 우리가 혹시 망하면 국가가 살려줘야 마땅하지...) 그의 논지에 따르면, 리카도의 정리가 현실의 경제적 운동에 따라 도출된 것이 아니고 반대로 리카도 이론 때문에 영국 등등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현실적 적대관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론이 현실을 낳았다고 하는, 전도된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타고난 아름다움과 조화를 파괴하는 요소가 궁극적으로 상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갔더라면 아마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유일한 결점이 자본 그 자체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놀랄만큼 무비판적이고 거짓 학식으로만 가득 찬 인물만이 - 그의 보호무역주의자적 이단에도 불구하고 - 바스티아나 그 밖의 다른 모든 최근 자유무역주의 낙관론자들이 의존하는 이른바 조화로운 지혜의 은밀한 원천이 되었다.* (ㄱ판, 771~72; M588)


케리는 보호무역주의자이니 바스티아 등 자유무역주의자들에게는 "이단"인 셈이다. 이러한 케리의 속류경제학을 마르크스는 '잉여가치학설사'에서 자세히 씹어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에 달린 일주를 보면:

초판과 제2판에는 여기에 다음 주가 덧붙어 있었다. "나는 제4부에서 그의 학문의 천박함을 좀더 자세히 입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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